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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어느 흑인 이웃의 장례식

Los Angeles

2026.08.02 18:30 2026.08.02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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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섭 동서장례 대표

이효섭 동서장례 대표

연고가 없는 남가주에 새 삶을 개척하며 장의사를 개업했다. 낯선 미국에 이민와 생존을 위해 노력했고, 자녀들에게 기회를 만들어 준 어르신들의 마지막 길에 “수고하셨습니다”하는 감사의 마음으로 장례를 해드리려 노력한다. 장의 예식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예식이지만언어가 같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의 지도를 받으면 더 위로가 된다.
 
지난 3년 동안 주로 한인들 장례를 인도했다. 초심을 잃지 않고 한 분 한 분 정성을 다하고 있다. 덕분에 많은 유가족이 좋은 평가를 해 주셔서 감사하다.  
 
그런데 요즘은 지역 주민의 장례도 많아지고 있다. 며칠 전에도 한 주민과 상담 약속을 했는데 흑인 주민이었다.  
 
장의사는 장례를 인도할 뿐 아니라 사망증명서도 작성해야 한다. 사망증명서는 한 사람의 삶이 총정리 된 서류다. 부모가 누구고,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으며, 평생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도 기록된다. 또 결혼 여부와 배우자의 이름,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디에서 시신 처리를 했는지도 묻는다.  
 
사망 증명서를 작성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망자의 삶이 그려진다. 장례를 치러드린 흑인은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미국 남부의 앨라배마주에서 출생했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시기에 성장기를 보낸 그는 제대로 대접을 받았을까? 그는 흑인 민권 운동의 산증인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는 2년 동안 해병대 복무 후 남가주에서 일자리를 얻었고 그 회사에서 40년 이상 근무했다.  
 
평생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분을 보며, 치열했을 그의 삶을 생각해 봤다. 그도 젊은 시절 지독한 인종차별을 겪었을 것이다. 1960년대 흑인 사회가 동등한 인권과 투표권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을 때 그도 그 자리에 함산 했을까? 나는 흑인 사회의 치열한 민권운동 덕분에 소수계에 대한 차별도 사라지고 이민 문호도 넓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의 장례를 인도하며 정성으로 모셨다.  
 
퇴역 군인은 국립묘지에 묻힐 수 있다. 국립묘지와 해병대 측에 연락해 가족이 원하는 날 하관 일정을 잡았다. 하관식은 해병대에서 모든 예식을 준비하고 엄숙하게 진행했다. 6명의 해병이 성조기로 덮는 관을 운구했고 7발의 예포를 3번, 총 21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어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가 숙연했다. 해병 둘이 관을 덮고 있던 성조기를 접어 유가족 대표에게 무릎을 꿇고 전해준다. “미국은 당신의 사랑하는 가족이 국가를 위해 군에 복무한 것을 감사하며 이 국기를 드립니다.” 그리고 깍듯이 경례한 후 퇴장한다. 성조기를 전해준 군인은 망자가 퇴역할 때 보다 계급이 더 높았다. 약 10분 동안 최고의 예우를 하는 미국의 모습에 정말 감동을 받았다.  
 
미국 사회에서 소수 민족에게도 동등한 기회가 보장되게 된 것은 우리 이웃인 흑인 커뮤니티의 공로가 크다. 그리고 어찌 보면 그들은 지금도 일부 인종차별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 최전선에 있다. 흑인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도 다시 정립되었으면 좋겠다. 생면부지의 흑인 장례를 인도하며 떠오른 생각이다.  
 
우리가 매일 누리는 자유와 권리를 있게 한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이효섭 / 동서장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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