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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고려의 인쇄 문화 유산과 한글 이야기

Los Angeles

2026.08.02 18:30 2026.08.0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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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류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모니카 류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한국어진흥재단은 매년 여름방학 미국 교육행정가 한국 초청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연수는 한국학 교수의 역사와 문화 강의로 시작된다. 참석자 대부분이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라 근대사 정도는 알려줄 필요가 있어서다. 다음날부터는 재단 임원들과 함께 한글 관련 박물관과 주요 사적지를 방문하는 일정이다. 한글의 세계화를 위해 시작된 활동이다. 특히 올해는 고려인이 세계 최초로 만든 금속활자를 소개해 연수의 의미와 목적을 더 했다.    
 
매년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곳이 전쟁기념관과 독립기념관이다. 두 곳에서는 미국 교육행정가들도 엄숙하고 진지한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전시품과 사진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동판에 새겨진 참전 용사들의 이름도 유심히 살펴본다. 어떤 경우에는 6·25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할아버지, 삼촌을 기억하기도 한다.  
 
현재 한국어진흥재단 이사 가운데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하지만 나도 당시 겨우 걸음마를 하는 어린아이였기에 직접적인 기억은 거의 없다. 그리고 전쟁 후 힘든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는 애국심이 투철한 편이 아니었다. 집안의 장남인 큰오빠가 한국전쟁에서 전사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한국 워크숍에 리더 팀의 일원으로 참여하면서부터 ‘간접적인 애국자’가 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UN의 22개 참전국(의료 지원 6개국 포함) 가운데 가장 많은 병력을 파병한 나라가 미국이다. 기록에 따르면 누적 파병 미국은 178만9000명으로 외국 참전 용사의 64%를 차지했다. 아직도 발굴하지 못한 많은 미군 유해가 한국의 산과 강에 묻혀 있다. 워크숍 참석자들에게 나의 큰오빠도 한국전쟁 전사자라는 개인사를 들려주면, 그들과의 거리감이 더 줄어들곤 했다.  
 
 미국의 중고교에서 한국어가 선택 과목으로 만들어진 것은 한국어진흥재단의 노력 덕이 크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당시, 한국은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라 관심이 적었기 때문이다. 한국어반 개설에는 숙성기간이 필요했고, 한국을 알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된 것이 교육행정가 한국 초청 연수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미국현대언어협회 (MLA) 통계를 보면, 한글은 아메리칸 싸인 랭귀지와 함께 미국에서 대학생 수강생 숫자가 늘고 있는 두 가지 언어 가운데 하나다.  한글을 배우는 대학생은 2016년부터 5년간 약 38% 증가했고, 외국어 중 10번째로 숫자가 많다. 중고교에서 한글을 배우는 학생이 늘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 문화와 역사, 한글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것은 고려인(高麗人)의 문화적 유산도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번 연수 때 유네스코 세계 유산인 백제 유적지구로 교육 행정가들을 안내하면서 많은 것을 보았고 또 배웠다. 백제 유적지인 충청남도의 공주와 부여, 전라북도 익산 등지에는 삼국통일 후 건국된 고려의 유물도 남아 있는 곳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일제 강점기에 공주 고등보통학교 교사를 했던 가루베 지온이라는 인물이 백제 왕릉들을 도굴해 많은 백제 예술품이 일본으로 몰래 유출됐다는 사실이다.
 
고려의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1377년에 나온 세계 최초로 금속 활자본 직지(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다.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가리키면 그것이 곧 부처의 마음임을 깨닫는다’는 의미다. 당시 고려는 이미 종이를 사용하고 있었고, 금속 활자는 불교 경전 내용을 쉽고, 빠르게 인쇄하기 위한 것이었다. 직지는 1984년 청주에서 택지 개발사업을 하던 중 고려시대 사찰인 흥덕사 절터 발굴 당시 발견됐다고 한다.  
 
고려는 목판으로 팔만대장경을, 금속활자로 직지를 인쇄했고, 고려를 이은 조선은 한글을 만들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고려는 지식을 보존하고 널리 전했으며, 조선은 한글로 모두가 지식을 공유할 수 있게 길을 열어 준 것이다.  
 
이러한 엄청난 문화유산을 받은 것이 고려인(高麗人) 코리안이다. 코리아의 애초 영문 표기는 Korea가 아닌 Corea였다. 내가 갖고 있는 1755년 런던에서 인쇄된 지도에도 동해는 'Gulf  Of Corea'로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C'든, 'K'든 상관없다다. 우리는 고려인 코리안이다.  

모니카 류 /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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