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관객이 ‘인터스텔라’(2014)를 정말 좋아했다는 걸 알고부터 한국에 오고 싶었다. 가본 적 없는 나라에서 내 영화를 좋아한다는 게 신기하고 너무 기분 좋았다.” "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3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영화 ‘오디세이’ 내한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뉴스1
신작 ‘오디세이’로 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첫 내한 기자회견을 가진 크리스토퍼 놀런(56) 감독은 “‘테넷’(2020) 때는 코로나19로 올 수 없었는데 드디어 와서 영광”이라며 “‘오디세이’로 처음 만나게 된 한국 관객이 너무 궁금하다”고 환하게 웃었다. ‘오디세이’는 ‘블록버스터의 장인’ 놀런 감독이 그리스 작가 호메로스의 고대 영웅서사 『오디세이아』를 과감하게 재해석한 영화로, 오는 5일 개봉한다.
지난 1일 내한한 ‘오디세이’ 팀은 주말 동안 수도권 곳곳에서 목격담이 속출했다. 주연 오디세우스 역의 맷 데이먼(55)은 ‘제이슨 본’(2016) 이후 10년 만의 한국행에 온가족이 동행했고, 입국하자마자 야구장(키움 히어로즈 고척돔 홈경기)을 찾기도 했다. 놀런 감독의 아내(1997년 결혼)이자 놀런과 거의 모든 작품을 함께해온 프로듀서 엠마 토마스(54)는 “1일 한국에 와서 크리스(놀런)와 한강도 걷고 올리브영도 갔다. (익선동에서 먹은) 소금빵은 너무 맛있더라. 저희 아들 여자친구가 한국계 미국인이어서 한국에 가면 해야 할 걸 알려줬다”고 깜짝 공개했다.
영화 '오디세이' 홍보를 위해 방한한 할리우드 유명 스타 맷 데이먼이 1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프로야구 SSG 랜더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를 관람하며 관중에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디세이’는 한국에서 북미·중국에 이어 세계 3위 흥행성적을 거둔 천만영화 ‘인터스텔라’(2014)를 비롯해 ‘다크나이트’ 시리즈, ‘오펜하이머’(2023) 등 대작을 만들어온 놀런 감독의 최고 규모 역작이다. 알려진 순제작비만 2억 5000만달러(약 3600억원)에 달한다.
기원전 12세기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타카 왕 오디세우스(맷 데이먼)가 신들의 분노에 맞선 10년여 귀국 여정을 그렸다. 오디세우스는 손님을 환대해야 한다는 ‘제우스 법’(크세니아·Xenia) 시대의 신뢰를 악용해, 신의 공물로 위장한 ‘트로이의 목마’에 병사들과 숨어들어 트로이 성을 함락시킨다. 그에 대한 업보처럼 폭풍과 고대 거인, 망자들의 손에 병사를 차례로 잃고, 사랑하는 왕비 페넬로페(앤 헤서웨이)와 아들 텔레마코스(톰 홀랜드)의 기억마저 잃을 위기에 처한다. 영웅의 죄의식과 가족애를 통한 구원이란 주제를 마치 놀런판 ‘반지의 제왕’이라 할 만한 광대한 신화 세계에 장장 172분간 펼쳐냈다.
영화 '오디세이'는 10년간 이어진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 오디세우스(맷 데이먼 분)가 왕의 부재를 틈타 그를 기다리고 있는 아내 페넬로페(앤 해서웨이 분)와 아들 텔레마코스(톰 홀랜드 분)에게 돌아가기 위한 여정에 나서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유니버설 픽쳐스
놀런 감독이 참고했다고 밝힌 노턴출판사 번역본의 번역가 에밀리 윌슨은 뒤늦은 고전 열풍에 감사하면서도 오히려 “서사의 깊이가 부족해졌다”고 비판한 바다. 그가 영국 매체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기고한 이 영화 관람평 제목은 ‘단순한 남자’였다. 놀런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그의 번역본을 인용해 말한 ‘(오디세우스는) 복잡한 남자’를 비튼 제목이다.
그러나 반응은 역대급이다. 지난달 17일 개봉한 북미를 비롯해 첫 주말 전세계 2억 6400만달러 매출을 올렸고, 북미에선 R등급(미성년자 관람불가) 흥행 신기록을 연일 경신 중이다. 흥행 분석 사이트 박스오피스모조에 따르면 2일까지 글로벌 누적 수입은 9억1139만달러로, 전작 ‘오펜하이머’의 누적 매출(9억7581만달러)을 개봉 2주 만에 바짝 따라잡았다. 북미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의 일반관객 신선도(100% 만점에 97%)는 평단 평점(94%)을 넘어 놀런 영화 최고치를 찍었다.
실사 촬영 장인으로 통하는 놀런 감독은 '오디세이'에서 10년 걸친 트로이전을 끝낸 트로이 목마도 실현 가능한 전술로 치밀하게 되살렸다. 10.7m 높이 실물 트로이 목마, 실제 항해가 가능한 전투함도 제작했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영상 화질이 압도적으로 뛰어난 ‘아이맥스 필름’을 애용해온 놀런 감독이 ‘오디세이’에선 할리우드 최초로 영화 전체를 아이맥스 필름으로 촬영했다. 미국 매체 워싱턴포스트는 전세계 41곳뿐인 70㎜ 아이맥스 전용관에서 보려는 ‘오디세이’ 팬덤이 1장에 최고 1000달러(약 144만원)짜리 암표까지 등장시켰다고 보도했다.
개봉 전 캐스팅 논란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오디세이’는 주로 백인으로 재현돼온 전쟁의 신 아테나(젠데이야), 트로이 전쟁을 촉발한 ‘가장 아름다운 여성’ 헬레네(루피타 뇽오) 등에 유색인종 배우를 기용했다. 오디세우스의 부하 중엔 아시아계도 있다. 한국계 배우 윌 윤 리가 연기했다. 트로이 목마 전술을 완성하는 이타카 병사 시논 역은 트랜스젠더 배우 엘리엇 페이지가 맡았다. 개봉 전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 등이 “PC(도덕적 올바름)로 인한 작품 훼손”이라 비난했지만 놀런 감독은 신화가 바탕인 창작물인 만큼 무의미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영화에서 주인공 오디세우스(맷 데이먼)와 이타카 병사들은 목마 안에 매복한 채 들이친 바닷물에 익사한 전우들의 시신을 디뎌 밟고 승전의 기회를 얻어낸다. AP=연합뉴스
이러한 다인종적 인물 해석에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블록버스터란 점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3일 기자회견에서 놀런 감독은 “이 이야기(『오디세이아』)를 모르는 분도 최대한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면서 “‘오디세이’는 관객을 오디세우스의 여정에 초대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갑판에, 산에, 괴물 키클롭스의 동굴에 관객이 동행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찍었다”고 말했다. 토마스 프로듀서는 “‘오디세이’는 미국에 사는 영국인인 저한테도, 한국이나 인도·프랑스 사람한테도 보편적 이야기다. 이 영화의 연결, 유대감이란 주제는 3000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똑같다”면서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것이 시네마(영화)의 아름다운 점”이라고 덧붙였다.
놀런 감독이 영화 '오디세이' 촬영 당시 현장에서 소품을 재정비하고 있다. 매작품 필요한 촬영 장비를 발명하듯 연출해온 놀런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횃불만이 유일한 광원이던 시대적 질감을 살리기 위해 수천개의 장치를 활용해 실제 횃불이 비추는 듯한 자연스러운 조명을 표현한 특수 LED 장치인 '파이라헤드론'을 개발하기도 했다. 사진 AP=연합뉴스
극 중 오디세우스의 20여년 삶을 연기한 맷 데이먼은 “인생이 어느 지점에 있느냐에 따라 울림이 다를 것”이라며 원작만큼 해석의 여지가 풍부한 작품이라고 전했다. ‘오디세이’ 팀은 4일 영등포 타임스퀘어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해 관객들을 직접 만날 예정이다.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