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사망 원인 1위는 암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사망자의 24.8%가 암으로 죽었습니다. 암에 대한 공포를 다스리고, 평화롭게 공존할 방법. 암 생존자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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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이 음식 두가지 먹었다…암 이겨낸 의사 부부 ‘5:5 식단’
」
2013년 4월의 햇살은 따스했지만, 외과 전문의 김병천 교수의 손끝은 기이할 정도로 서늘했다. 평소 아내와 손을 잡을 때마다 “난로처럼 따뜻하다”는 말을 듣던 그였다.
꽃샘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마네킹의 의수’를 이식한 듯한 이질적인 차가움이었다. 수만 명의 암세포를 도려내온 베테랑 의사의 직감이 머릿속에서 경보를 울렸다.
2013년 유방암 투병 중이던 아내 이은희 녹십자진단검사센터 진단검사의학과 교수(왼쪽)와 김병천 교수가 함께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고 찍은 사진. 부부는 현재 모두 건강한 상태다. 사진 김병천 교수 제공
검사 결과는 잔혹했다. 가슴 속 흉선에서 발견된 7㎝의 거대 종양. 5년 생존율이 40%도 안 되는 흉선암 3기였다. 더 기막힌 현실은 그의 동료이자 아내 역시 유방암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의사 부부의 거실은 순식간에 암 환자 둘의 병실이 되었다.
아내가 먼저 암에 걸렸을 때 이미 한 차례 무너졌던 덕분일까요. 제가 암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땐 오히려 덤덤하더군요. 그때부터 우리는 생존 전략을 공유하는 ‘투병 전우’가 되었죠.
김병천 교수가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는 모습. 뉴스페어링
Q : 왜 내가 암에 걸렸을까, 원인을 짚어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술을 많이 마시는 편도 아니었고 담배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몸에서 보내는 신호가 있었어요.
Q : 항암 치료 중 가장 힘들었던 건 무엇이었나요?
항암제가 몸에 들어가면 입안부터 식도까지 모든 점막이 헐어버립니다. 목구멍에 뜨거운 불덩이를 집어넣은 것 같은 고통이 24시간 계속되더라고요. 먹는 것 자체가 공포가 됐어요. 의사인 저조차 ‘굶어서 죽겠구나’ 싶었어요. 절망의 끝에서 다시 숟가락을 들었어요. 암과의 싸움은 결국 기력 싸움이고, 그 기력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에서 결정된다는 걸 아내의 항암 치료를 지켜보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Q : 구체적으로 어떻게 식단을 하셨어요? 암 환자가 피해야 할 음식이 많잖아요.
흔히들 고기는 먹으면 안 된다 하는데 고기를 완전히 끊으면 환자의 몸이 무너집니다. 짠 음식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몸의 염분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완전한 무염식은 좋지 않아요. 결국 ‘어떻게 먹느냐’가 핵심입니다. 저는 ‘5:5 원칙’을 세웠습니다.
나영무 원장은 긍정적인 마인드셋의 비결로 ″스트레스를 피하지 말고 관리하라″고 강조한다. 김경록 기자
국내 스포츠 재활의 선구자로 통하는 재활의학과 전문의 나영무(64) 솔병원 원장. 그는 누구보다 건강검진의 중요성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예방만큼 중요한 치료는 없다고 믿었다. 특히 나 원장이 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간암과 폐암으로 모두 돌아가셨기에 2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해왔다.
그랬던 그도 암을 피하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발견할 기회를 여러 번 놓쳤다. 너무나 익숙하고 친근한 증상 때문이었다. 젊을 때부터 이어진 변비와 설사, 과민성 대장 증후군. 늘 겪던 증상이라 나이가 들며 예민해진 정도로 여겼다.
지나고 보니 그건 몸에서 보낸 ‘구조 신호’였다.
" 젊을 땐 며칠 지나면 낫던 증상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된다면 그건 더 이상 ‘체질’이 아니라 어떤 병에 가까울 수 있는 거죠. 근데 그땐 이걸 깨닫지 못했어요. "
대가는 컸다. 2018년, 직장암 4기. 항문 위쪽 직장에서 시작된 암은 간과 폐까지 번져 있었다. 생존율 5%.
‘살도 안 쪘고 술도 육식도 즐기지 않는데 왜?’ 천천히 삶을 되짚자 놓친 것들이 보였다. 의사인 그도 간과했던 게 있었다.
자책을 뒤로하고 그는 버텼다. 매일매일 악착같이 컨디션 관리를 했다. 그러나 암 치료가 끝났다고 생각한, 2020년 재발 소식은 그를 무너뜨렸다. 이미 간의 75%를 잘라냈고, 직장과 오른 쪽 폐 일부도 절제한 상태. 고통스러운 항암을 다시 할 엄두가 안 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삶의 의지를 짓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