윔블던 연습 시합 중 얼음 주머니를 머리에 얹은 여자 테니스 마리아 사카리. [EPA=연합뉴스]
폭염 앞에 스포츠도 멈춰 섰다. 경기가 취소되거나 단축되고, 경기 규칙마저 바뀌고 있다. 기후 변화는 어느덧 스포츠의 존립을 위협하는 눈앞의 실체가 됐다.
지난달 31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경기에서 롯데 포수 손성빈은 1회초를 마친 후 미열과 구토 증세를 보여 교체됐다. 롯데 황성빈 역시 1루로 전력 질주한 직후 어지럼증을 호소해 잠시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다.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탓에 창원 경기는 1일과 2일 이틀 연속 취소됐다. 부산에서도 1일 경기가 취소됐으며, 2일 경기는 시작 시간을 30분 연기한 끝에 강행돼 논란을 불렀다.
인조잔디 구장은 지열이 섭씨 50도 가깝게 치솟아 선수와 관중의 안전을 보장하기 힘든 실정이다. 이에 KBO는 고척스카이돔을 제외한 야외 구장의 경기 시작 시간을 최대 1시간까지 늦출 수 있도록 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전체 경기의 약 20%에 달하는 20경기가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의 경기 중단 권고 기준인 ‘체감온도지수(WBGT)’ 28도 이상의 가혹한 조건에서 치러졌다. WBGT는 기온, 습도, 풍속 등을 종합해 체감 온도를 면밀하게 산출하는 지표다. 지난달 4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프랑스와 파라과이의 16강전 당시 경기장 기온은 섭씨 38도에 달했고, 경기 중 WBGT는 34도에 육박했다.
이에 따라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기상 조건과 상관없이 모든 경기에 수분을 섭취하는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를 의무적으로 시행했다. FIFPRO 관계자는 “기온이 향후 대회 및 리그 일정을 결정하는 데 더욱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월드컵 무대에서 더위와의 전쟁은 당분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2030년 월드컵 공동 개최지인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역시 기후 위기가 극심한 지역이며, 2034년 대회가 열리는 사우디아라비아 또한 폭염을 피해 겨울 개최가 유력하다.
윔블던에서 얼음 수건을 목에 두른 테일러 프리츠. [AP=연합뉴스]
지난달 막을 내린 윔블던도 이번 대회부터 폭염 시 경기 중 10분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제도를 새로 도입했다. 경기 중 폭염으로 인한 정전으로 전자 라인콜 시스템이 멈춰 경기가 중단되는가 하면, 더위에 지친 볼키즈를 대신해 성인 스태프가 투입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타데이 포가차르가 물을 마시며 투르 드 프랑스 선두를 달리고 있다. 뒤를 쫓는 선수는 상의를 풀어헤쳤다. [AFP=연합뉴스]
세계 최고 권위의 도로 사이클 대회 투르 드 프랑스에서는 100년이 넘는 대회 역사상 최초로 언덕 코스 일부를 단축했다. 가디언은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 선수들이 얼음주머니를 목 뒤에 쑤셔 넣고, 탈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수시로 소변 검사를 받는다며 “마치 대형 헤어드라이어 바람 속으로 달려가는 기분”이라는 한 선수의 소감을 전했다.
스위스 로잔대학교 연구진은 “21세기 말이 되면 역대 동계올림픽을 개최했던 21개 도시 중 단 8곳만이 대회를 치를 수 있는 추운 기온을 유지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