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폭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궂은 날씨였다. 오늘도 새벽녘까지 세차게 비가 내리더니, 동이 틀 무렵에야 겨우 하늘이 개었다. 비 온 뒤라 그런지 공기 속에 제법 선선한 기운이 감돌았다. 한동안 집안에만 갇혀 지내느라 찌뿌둥해진 몸을 깨우려 일찍 산책을 나섰다.
낚시터가 있는 저수지 방향으로 한참을 걷는데, 개울가에 자줏빛 꽃을 활짝 피운 엉겅퀴가 내 시선을 붙잡았다. 자태가 아름다우면서도 약성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지느러미엉겅퀴’. 반가운 마음에 엉겅퀴를 좀 채취해 갈 요량으로 작은 배낭에서 목장갑을 꺼내 끼었다. 그러나 장갑이 무색하게도, 엉겅퀴 줄기를 꺾는 동안 날카로운 가시가 목장갑을 뚫고 들어와 손가락을 여러 번 찔러댔다. 욱신거리는 통증에 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꽃에 상징적인 의미 부여한 꽃말
자연을 향한 애정어린 관찰과
귀 기울이는 삶의 여유가 담겨
김지윤 기자
집에 돌아와 옆지기에게 엉겅퀴를 건넸다. 약술을 담그겠다며 반기는 그녀에게 손가락을 보여주며 가시에 찔렸다고 짐짓 엄살을 부렸더니, 그녀가 깔깔대고 웃으며 물었다. “엉겅퀴 꽃말이 뭔지 아세요?” 모른다고 고개를 흔들자,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 꽃말을 알았으면 조심하셨을 텐데. 엉겅퀴 꽃말은 ‘날 건드리지 마세요’예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누가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는 몰라도, 가시로 온몸을 무장한 엉겅퀴의 생태와 참으로 절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이 가시를 지닌 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흥미롭게도 이처럼 가시 돋친 식물들은 대부분 독이 없다. 스스로를 지킬 무기가 있기에 굳이 독을 품을 필요가 없는 것. 덕분에 인간은 가시를 피해 그것들을 귀한 먹거리나 약으로 쓸 수 있다.
기왕 꽃말 얘기가 나왔으니, 우리 주변에서 피어나는 식물들의 숨은 사연들을 가만히 짚어본다. 봄처녀를 유혹하듯 논밭 두렁에 파릇하게 돋아나는 냉이의 꽃말은 ‘나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이다. 이른 봄, 가장 먼저 제 몸을 내어주어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만드는 나물에게 이보다 더 어울리는 고백이 있을까.
반면, 잎이 다 지고 나서야 비로소 꽃대가 올라오는 상사화는 꽃과 잎이 평생 서로를 만나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 꽃말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이 애틋한 이름을 알고 나면, 식물의 생태적 특징을 포착해 인간의 절절한 감정으로 치환해 낸 옛사람의 지혜에 감탄하며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내게 된다.
이뿐인가. 태양만을 바라보며 피어나는 해바라기는 ‘일편단심’, 한여름 붉은 수탉의 벼슬처럼 피어나는 맨드라미는 ‘시들지 않는 사랑’, 가을 들판에서 바람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는 ‘소녀의 순정’이다. 심지어 너무 작아 보일락 말락 하는 별꽃조차 ‘슬픈 추억’이라는 꽃말을 품고 있다.
이처럼 꽃말은 꽃의 모양이나 색깔, 향기, 그리고 생태적 특징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탄생했다. 나는 가끔 그 꽃말을 처음 지어낸 이들의 ‘아름다운 첫 마음’을 가만히 헤아려 보곤 한다. 엉겅퀴의 화려한 보랏빛 꽃만 보고 잎사귀에 돋아난 가시의 경고를 읽지 못하면 ‘날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다부진 외침을 듣지 못할 것이다.
결국 꽃말 속에는 자연을 향한 애정 어린 관찰과, 꽃이 건네는 은밀한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삶의 여유가 깃들어 있는 셈이다. “아예 꽃을 못 보는 마음/마음 안에 꽃이 살지 않아/꽃을 못 보는 마음”(이문재의 ‘꽃말’)에는 꽃도, 꽃말도 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 안에 꽃이 살 수 있는 작은 여백조차 없다면, 세상의 그 어떤 아름다운 꽃말의 미학도 결코 피어나지 못할 것이다.
오전에 엉겅퀴를 채취하다 가시에 찔린 손가락 끝이 여전히 쿡쿡 쑤셔온다. 이 통증 덕분에 ‘날 건드리지 마세요’라던 엉겅퀴의 꽃말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아내가 정성껏 담근 엉겅퀴 약술이 붉게 익어갈 즈음, 우리는 술잔을 기울이며 오늘의 이 작은 찔림을 다시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가시는 상처를 주었지만, 그 가시 덕분에 비로소 꽃의 마음을 읽는 법을 배웠다. 상처를 통해 타인의 경계를 이해하고, 아픔을 거쳐서야 비로소 생의 여백을 채우는 지혜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