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저신용자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겠다며 포용금융을 강화하고 있지만 실제 은행권 대출은 고신용자에게 집중되면서 고신용자와 저신용자의 대출 규모 격차가 5.8배까지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경기 둔화로 연체율이 상승하고 저신용자의 상환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은행에 저신용자 대상 저금리 대출 확대만 요구하는 방식으로는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대출창구 모습. 뉴스1.
3일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실이 한국은행에서 받은 국내은행의 신규 대출 관련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은행에서 새로 대출받은 차주 1명의 평균 대출액은 고신용자 6470만원, 중신용자 1577만원, 저신용자 1120만원이었다. 2022년 1분기와 비교하면 4년 동안 고신용자의 신규대출액은 18.6% 늘어난 반면 저신용자는 27.5%, 중신용자는 13.4% 줄었다.
김경진 기자
이에 따라 고신용자와 저신용자의 1인당 신규대출액 격차는 지난 4년 동안 3.5배에서 5.8배로 확대됐다. 저신용자는 2023년 이후 3년째 1000만~1200만원대에 머문 반면, 고신용자는 대부분 6000만~7000만원대를 유지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용점수가 높은 차주는 연체 위험이 낮아 금융회사가 더 큰 대출 한도와 낮은 금리를 적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과”라며 “최근 4년간 격차가 더 벌어진 것은 수도권 집값 상승으로 고소득·고신용자의 주담대 수요가 크게 늘어난 영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취약차주 금리 부담 완화와 채무조정 확대 등 포용금융 정책을 잇달아 내놨지만 흐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신용자의 평균 신규대출액은 지난해 3분기 1214만원에서 4분기 1156만원, 올해 1분기 1120만원으로 두 분기 연속 감소했다. 반면 고신용자는 6926만원에서 6176만원으로 감소했다가 6470만원으로 다시 반등했다.
지난 5월 은행의 신규 주택담보대출 총액은 저신용자 대상이 1000억원인 반면, 고신용자 대상은 4조원에 달해 40배 차이를 보였다. 신용대출 총액도 저신용자는 2000억원, 고신용자는 2조4000억원으로 12배 차이를 보였다. 은행권 관계자는 “포용금융 취지에 맞춰 취약차주 지원에 힘쓰고 있지만 개별 대출 심사에서는 신용도와 상환능력을 기본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은행이 저신용자 대출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연체율이다. 전체 대출자 가운데 연체한 저신용자의 비중은 2022년 1분기 1.68%에서 올해 1분기 2.39%로 높아졌다. 반면 고신용자는 0.00~0.01%, 중신용자는 0.01~0.02% 수준에 머물렀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가 둔화하거나 정부가 가계대출 총량을 관리하면 은행은 연체 위험이 큰 저신용자보다 고신용자 대출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며 “한편으로는 가계대출 총량을 억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저신용 대출 확대를 요구하는 것은 정책적으로도 상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경진 기자
전문가들은 금융회사가 위험에 맞는 금리를 적용하기 어려워질수록 신용의 기본 원칙이 흔들리고 오히려 저신용자 대출 확대를 가로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석 교수는 “신용도별 대출 격차를 정책을 통해 인위적으로 뒤바꾸려 하면 대출 부실 가능성이 커지고 결국 금융시스템에도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도 "정부가 시장 원리를 거스르며 저신용자에게도 낮은 금리 적용을 요구한다고 해서 그 혜택이 취약계층에 온전히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