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북중미월드컵 당시 결승전 직후 시상식을 기다리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 로이터=연합뉴스
회장 4연임을 위한 묘수인 줄 알고 내놓은 이른바 월드컵 민영화(FIFA 포워드 엔터프라이즈, FFE) 프로젝트가 자충수가 되면서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사면초가 처지에 놓였다. 프로젝트 자체가 전 세계 축구계 반발로 무산됐을 뿐 아니라 인판티노 회장은 법적 리스크와 정치적 고립이라는 악재에 직면했다. 프로젝트의 한축이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측도 인판티노 회장을 손절매하는 분위기다.
4일(한국시간) AP통신은 유럽축구연맹(UEFA)이 FFE 추진과 관련해 FIFA를 상대로 본격적인 법적 절차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가 입수한 UEFA 측 로펌의 서한에 따르면, UEFA는 FIFA에 향후 소송 진행을 위해 프로젝트 관련 데이터와 문서, 전자 메시지 등 증거 자료를 의무적으로 보관하라고 통보했다. 특히 서한에 증거 보전 대상인 FIFA 핵심 임원 18명 명단이 포함됐다. 인판티노 회장 외에 토마스 파이어 최고재무책임자(CFO), 아르센 벵거 글로벌축구개발책임자 등이 18명에 포함됐다. UEFA 측 변호인은 “FFE는 축구의 적절한 운영과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밝혔다.
월드컵 민영화(FFE) 프로젝트가 무산된 뒤 인판티노 FIFA 회장이 사면초가 처지에 놓인 분위기다. 사진은 북중미월드컵 당시 경기장에 펼쳐진 FIFA 로고. AP=연합뉴스
FIFA 내부 분위기도 냉랭하다. 스위스 현지 매체 등 외신은 “FFE는 우리도 모르게 밀실에서 진행된 일”이라고 분노하는 FIFA 이사회 멤버 및 임직원 반응을 전했다. 인판티노 회장에 우호적이던 세계 축구계도 급속하게 등을 돌리는 분위기다. 인판티노 측은 지난 북중미월드컵 기간 211개 FIFA 회원국 중 200개 넘은 국가의 지지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내년 3월 열릴 차기 회장 선거에서 무투표 추대를 통한 4연임도 자신했다. 하지만 FFE 추진이 실패로 돌아가자 지지 공개 철회가 잇따랐다. 심지어 UEFA는 차기 FIFA 회장 후보 물색에 나섰다. 다만 월드컵 본선 참가국 확대안(48→64개국)으로 수혜가 유력한 남미(CONMEBOL)와 아프리카연맹(CAF)이 인판티노를 지지하고 있어 향후 치열한 표 대결의 불가피하다.
지난 11월 미국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중미월드컵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그 뒤로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과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왼쪽부터)이 서 있다. AP=연합뉴스
인판티노 회장은 믿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 미국 측이 외면한 대목이 가장 뼈아프다. 인판티노 회장은 FFE 무산 직후 트럼프 대통령과수차례 긴급 통화를 시도하며 도움을 구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돈인 쿠슈너 가문(스라이브 캐피털)이 FFE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여했다. 인판티노 회장으로선 FIFA 평화상 수여와 미국 축구대표 폴라린 발로건 징계 유예 등으로 친분을 믿었던 트럼프 대통령 측의 외면이라는 점에서 충격은 컸다. 트럼프 대통령과 연결되지 않자 인판티노 회장은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국무부 관계자는 “루비오 장관은 인판티노 회장과 대화할 계획이 없으며 향후 전화 통화도 예정되어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