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관한 퐁피두 센터 한국 분관을 찾았다. 프랑스 본관이 재정비에 들어가면서 주요 소장품들이 순회 전시되고 있다. 한국에서의 첫 전시는 피카소와 브라크로 대표되는 입체파 작품들이었다. 전시관에 들어서자 강렬한 피카소의 작품이 나를 반겼다.
피카소. 미술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에게도 친숙한 대표적인 현대 미술가다. 그런데 내가 어렸을 땐 이상하게 그린 그림을 보고 ‘피카소처럼 그렸네’라고 표현하곤 했다. 실제로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좀 괴기스럽달까? 낯설다.
입체파는 사물을 하나의 시점으로 바라보던 관습을 깨뜨렸다. 여러 시점에서 본 모습을 하나의 화면에 재구성해 표현한다. 그래서 얼굴의 정면과 옆모습을 하나의 얼굴에 욱여넣는 형태로 그렸다. 눈앞의 장면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대상을 경험하며 알게 된 여러 모습을 한 화면에 담으려 했던 셈이다.
사실 인간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는 눈으로 들어온 정보를 사진처럼 저장하지 않는다. 시선을 움직이며 얻은 정보와 경험, 기억을 종합해 하나의 사물을 이해한다. 얼굴도 정면과 옆모습을 따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물로 통합하여 인식한다. 그래서 ‘본다’라는 행위는 복사보다는 구성에 가깝다.
그런데 요즘 사회는 점점 하나의 시선만을 요구하는 듯하다. 자신이 본 장면이 전부라고 믿고, 다른 관점은 틀렸거나 왜곡되었다고 쉽게 판단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소박한 현실주의(naive realism)라 부른다.
물론 모든 관점이 동일한 가치를 갖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일 시점만으로는 모든 측면을 볼 수 없다는 사실도 잊어선 안 된다. 피카소가 해체한 것은 얼굴이 아니라 한 개의 시선만으로도 충분하단 믿음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외치기 전, 한 걸음 옆으로 움직여 다른 시선을 가져보는 일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