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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의 문화노트] 꼭대기 대신 1~4층, 63빌딩의 반전이 말하는 것

중앙일보

2026.08.04 08:08 2026.08.05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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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전문기자

이은주 문화전문기자

2012년, 이탈리아 건축가 렌초 피아노(88)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5년 전인 1971년, 영국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와 공동 작업으로 파리 퐁피두센터 설계 공모에 당선되며 세상을 놀라게 한 인물입니다. 1998년에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습니다.

그런 그가 인터뷰에서 계속 힘주어 말한 것은 뜻밖에도 굉장히 단순한 단어, ‘공공 공간(public space)’이었습니다. 공공 공간이란, 건물이나 공간이 그 자체의 기능을 넘어서,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고 머물고 쉴 수 있도록 열어둔 자리를 말합니다. 그는 “우리가 짓고 싶은 건물은 진정으로 사람들을 위한 건물”이라며 “그것은 사람들이 쉽게 다가가고, 오래 머물고 싶어 하는 건물”이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이런 건물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건축가들의 야망”이라고 덧붙였습니다.

63빌딩 별관을 전면 리모델링해 탄생한 퐁피두센터 한화. [사진 한화문화재단]

63빌딩 별관을 전면 리모델링해 탄생한 퐁피두센터 한화. [사진 한화문화재단]

 퐁피두센터 한화에서 열리고 있는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전시장 전경. [사진 한화문화재단]

퐁피두센터 한화에서 열리고 있는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전시장 전경. [사진 한화문화재단]

최근 서울 여의도 63빌딩을 찾았을 때 14년 전 그 인터뷰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1985년 준공 당시 249.6m 높이로 지어져 당시 대한민국 번영의 상징이 된 건물. 그러나 점차 더 높은 건물들이 속속 등장하며 존재감이 희미해지던 곳. 그런데 지난 6월 4일, 이곳에 ‘퐁피두센터 한화’가 문을 열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다시 이어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퐁피두센터와 한화문화재단이 4년 파트너십을 맺고 63빌딩 별관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으로,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을 10월 4일까지 선보입니다.

눈여겨볼 것은 위치입니다. 프랑스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가 설계한 미술관이 들어선 곳은 꼭대기가 아니라 별관 지상 1~4층, 사람이 걸어서 닿는 자리에 있습니다. 도쿄 롯폰기힐스가 모리미술관을 53층에 올린 것과는 다른 선택입니다. 같은 시기 전망대도 새 이름으로 다시 열렸고, 네덜란드 조경가 피트 아우돌프가 디자인한 정원도 생겼습니다. 미술관도, 63빌딩 지하와 연결된 식당과 카페도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빌딩 안에 미술관을 넣는다고 다 이렇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핵심은 공공 공간에 있습니다. 63빌딩은 과거처럼 ‘높이’로 힘을 과시하는 대신, 사람을 초대하고 머물게 하는 공간으로 변신했습니다. 한때 우리는 가장 높고 큰 건물을 경이롭게 바라봤습니다. 그러나 21세기 건축의 경쟁력은 달라졌습니다. 사람을 초대하고 문화를 품고 머물 이유를 만들어주는 건물이 사랑받고 살아남습니다. 그런 점에서 63빌딩의 변화는 단순한 리모델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높이의 시대에서 문화의 시대로 넘어가는, 도시의 진화입니다.





이은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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