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건강보험료 인상을 시도하다 물러났다. 탈모 건보에 이은 후퇴다. 완전히 물린 건지, 잠시 멈춘 건지 분명하지 않다. 여론이 좋지 않자 황급히 거둬들였다. 건보료 인상은 주가 폭락, 보유세 인상 논란과 맞물리면서 나흘 만에 사라졌다.
건보료는 세금 못지않게 민감하다. 외려 더 민감할 수 있다. 세금은 직장인의 33%가 안 내지만 건보료는 모두 낸다. 세금은 정기 인상이 없지만 건보료는 매년 올린다(올해 1.48%). 소득·재산이 오르면 따라 오른다. 이를 포함하면 매년 4~8% 오른다.
상한선 평균의 40배로 상향 추진
지나치게 높으면 사회연대 저해
일·대만처럼 분명한 기준 필요
이번에 손대던 건 정기 인상분이 아니다. 상한선·하한선 상향이다. 건보료는 월급이 아무리 많아도 1억2773만원까지 매기고, 이의 7.19%인 월 918만여원(회사가 절반 부담)을 낸다. 한 해 1억1020만원에 달한다. 직장인 평균의 30배이다. 임대·금융 등의 별도 소득이 있는 직장인과 지역가입자의 상한선은 459만원이며 15배다. 이것을 각각 40배, 20배로 올리려고 한다. 40배가 되면 상한이 월 1224만원(연 1억4688만원)으로 뛴다.
건보는 대표적 사회보험이다. 젊은이가 노인을, 부자가 저소득층을, 건강한 사람이 아픈 이를 돕는다. 아프지 않아도 보험료를 내고, 필요할 때 이용한다. 보험료를 많이 내든, 적게 내든 혜택은 같다. 이렇게 해서 사회 연대를 강화한다. 이게 민영보험과 차이점이다. 그래서 무한정 보험료를 매기지 않는다. 1885년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가 질병보험을 도입할 때 상한액이 평균의 3.1배였다. 외국의 상한 건보료는 평균치의 3~4배를 넘지 않는다. 한국은 상한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국민건강보험 발전 과제』, 이규식).
김종대 전 건보공단 이사장은 ‘미스터(Mr). 건강보험’으로 불린다. 복지부 공무원 시절 폭우에 집이 떠내려가는 줄 모르고 건보 도입에 밤새워 매달렸다(『국민건강보험 40년사』,문옥륜). 김 전 이사장은 최근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의 상한선이 평균의 5~7배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의료보험은 세금이 아니잖아. 내 보험료로 몇 명의 의료비를 부담할지 알 수 있어야 한다. 이건 벌칙이 아니다”라고.
지금의 상한 30배도 결코 약하지 않다. 2021년 월 6086만원(연 약 7억원)의 건보료를 낸 이가 있다. 여러 사업장에 소속되면 각각 건보료를 낸다. 그는 여러 곳에서 상한을 냈다(민주당 최혜영 전 의원 자료). 정부가 상한을 올리려는 이유는 형평성이다. 월 1억2773만원 버는 사람과 10억원 버는 사람의 건보료가 같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10억원 버는 사람은 세금 역시 훨씬 많이 낸다. 세금에서 매년 건보 재정의 14%(올해 11조원)를 지원한다.
외국은 원칙이 분명하다. 일본은 상한선 가입자가 전체의 1.5%를 넘으면 조정한다. 대만은 3%다. 한국은 상한선 해당자가 0.04%로 매우 적다. 게다가 ‘평균의 30배’ 기준에 맞춰 매년 상한을 올린다. 5년 새 30% 높였다. 그런데 갑자기 40배, 20배를 들고 나오며 골대를 옮기겠다니 놀랄 수밖에 없다.
2018, 2022년 건보가 크게 바뀌었다. 당시 전문가·노사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주도했다. 큰 혼란을 걱정했으나 의외로 조용했다. 수년간 다지고 또 다졌고, 자주 설명한 덕분이다. 그런데 이번엔 좀 이상하다. 공청회도 안 열고 뚝딱 해치우려 든다.
올해 건보가 적자로 돌아선다니 마음이 급할 수 있다. 그러면 과다 지출도 눈여겨봐야 한다. 병원에 너무 많이 간다. 외래진료 횟수(연 17.9회)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7배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노인 진료비, 경증 진료 지원 축소를 주문했다. 방향은 바르다. 그러나 진도가 나간 게 별로 없다. 무임승차로 불리는 피부양자도 여전히 많다. 김 전 이사장은 “비급여가 너무 많다. 그걸 손봐야 한다”고 말한다. 건보는 세계적 자랑거리다. 개편 작업도 수준급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