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된 미국, 반복되는 정치폭력 트럼프 숭배층·혐오층의 극한 대립 반트럼프 '폭력=정당한 응징' 포장
좌파 인사 "트럼프에 총알 박아야" 과격한 언어들 미디어 통해 증폭
비폭력 저항 '3.5%룰' 불발 후 과격화 고학력 엘리트, 정치폭력 더 긍정적
2024년 7월 13일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대통령 선거 유세 중 피격된 직후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
미국 대통령 자리가 급기야 극한직업이 돼버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4월 25일 백악관 기자단 만찬장 총격 사건 직후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보다 더 위험한 직업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하겠다.” 미국정치의 폭력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행사장인 워싱턴 힐튼 호텔 밖에선 총격 전부터 히스테리의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시위대가 ‘폭군에게 죽음을’ ‘그들 모두에게 죽음을’ 등의 피켓을 들고 모여들었다. 입장하는 기자들에게 “어떻게 아동 강간범과 저녁을 같이 먹을 수 있나”고 소리쳤다. 총격 이후에도 시위는 이어졌다. 상대를 ‘절멸시켜야 할 적’으로 몰아세우는 언어는 폭력의 문턱을 크게 낮춘다.
트럼프는 그 분열의 중심에 서 있다. 미국 정치사에서 그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지도자도 없다. 열렬한 숭배층과 강력한 혐오층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 간극에서 비롯한 폭력화의 원인으로 흔히 트럼프와 마가(MAGA)의 진영논리가 꼽힌다. 트럼프 스스로 모욕과 혐오의 레토릭을 쏟아냈다. 이게 반대 진영을 자극한 것은 물론 정치적 공론의 질을 떨어트렸다.
반트럼프 진영은 싸우면서 닮아가고 있다. 트럼프의 자극적 레토릭을 폭력이라고 비난하면서 자기 진영의 극단적 발언은 표현의 자유라고 둘러친다. 트럼프가 자유를 파괴하기 전에 뭔가 해야 한다는 주장을 서슴지 않고 한다. 심지어 물리적 폭력까지 불공정과 부패에 대한 정당한 응징으로 포장한다. 도덕적 우월감에서 나왔겠지만 그런 발언엔 과장이 섞이게 된다. 과열된 상황을 진정시키기는커녕 더 악화시킨다.
지난 25일 워싱턴DC 힐튼호텔에서 열린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 도중 행사장 밖에서 총성이 울리자 대피하고 있다. 총격범은 칼텍 출신 30대 엘리트 콜 앨런이었다. [로이터]
미국인 85% ‘정치폭력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 25일 워싱턴DC 힐튼호텔에서 열린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 도중 행사장 밖에서 총성이 울리자 대피하고 있다. 총격범은 칼텍 출신 30대 엘리트 콜 앨런이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들의 반트럼프 정서에서 나온 레토릭은 매우 공격적이다. 공화당 전국위원회 조사국은 총격 사건 사흘 뒤 민주당 측의 과거 극단 발언들을 영상과 함께 공개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재임 중 “트럼프는 이 나라의 실질적 위협”이라고 SNS에 썼다. 민주당 상원의원 엘리사 슬롯킨은 “트럼프는 민주주의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라고 비난했다. 정치 컨설턴트 릭 윌슨은 “트럼프에게 총알을 박아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의 고문이던 데이비드 플러프는 “다시는 못 일어나게 트럼프를 완전히 파괴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가 되면 다들 ‘비유적 표현’이라고 비켜 갔지만, 의도의 공격성을 감추진 못한다.
지금도 변한 게 없다.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근 ‘총력전(maximum warfare)’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여러 민주당 의원들이 이를 입에 달고 다닌다. 반대나 저항이라는 말을 제쳐두고 굳이 전투적인 말을 골라 쓴다.
과격한 언어는 미디어를 통해 증폭된다. 이미 미디어의 표현 수위는 아슬아슬한 지경에 이르렀다. 1기 트럼프 정부 초반부터 진보 언론들은 그에게 반역자나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으려 했다. 그게 반트럼프 시위대 구호의 단골 메뉴로 자리 잡았다. 저질스러운 인신공격을 할 때도 있다. 총격 사건 이틀 전 토크쇼 진행자 지미 키멀은 멜라니 트럼프를 두고 “곧 과부가 될 광채를 내뿜는다”고 했다.
사실 폭력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는 그전부터 느슨했다. 지난해 CNN은 유나이티드 헬스케어 대표 암살범 루이기 만지오니를 가리켜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라는 코멘트를 내보냈다. 수백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좌파 인플루언서 하산 파이커가 폭력을 정당화해도, 뉴욕타임스는 그를 ‘포용해야 할 대화 상대’로 표현했다.
보수층은 이를 개별적 일탈이 아니라 ‘확률적 테러(stochastic terror)’로 보기 시작했다. 반복된 적대적 언사가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시각이다. 증오 메시지가 임계점을 넘을 때 누군가 폭력 실행단계로 넘어갈 확률이 급격히 커진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자면 사건은 그 누군가의 단순한 광기 탓에 일어나는 게 아니다. 함수(사회구조)에 변수(증오)가 주입돼 결과값(폭력)이 도출되는 수리적 패턴에 가깝다. 총은 한 사람이 쏘지만, 방아쇠는 여러 사람이 당긴다는 비유가 여기서 나온다.
폭력 성향이 짙어진 건, 비폭력 저항이 결실을 맺지 못한 데 따른 반작용일 수 있다. 하버드대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워스(46)가 제시한 ‘3.5% 룰’이 미국에선 번번이 불발됐다. 인구의 3.5%가 비폭력 저항에 참여할 경우 정권이 무너진다는 가설이다. 반트럼프 진영이 꾸준히 벌인 전국적인 ‘노 킹스 데이’ 시위는 이 기준에 못 미치고 있다. 1기 트럼프 정부 말기의 BLM(흑인 목숨이 소중하다) 시위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례 모두 공권력의 ‘충성 이탈’이 일어날 수준엔 이르지 못했다. 이란의 이슬람 정권이 반정부 시위에도 불구하고 버티는 현실을 이 가설로 설명하는 학자도 있다.
비폭력 경로가 막히면 대안은 급진화하기 쉽다. 쌓이는 좌절은 분노로 바뀌어 출구를 찾는 법이다. 법과 제도 아래에서 끓다가 물러진 틈을 뚫고 터져 나온다. 그게 폭력적 공격이다. 사회심리학자 존 돌라드(1900~80)의 ‘좌절-공격 가설’이 설명하는 전형적인 경로다.
이런 폭력 기제에 상대적으로 쉽게 반응하는 건 의외로 고학력 엘리트층이다. 비영리 교육연구소 스켑틱리서치센터(SRC)의 2025년 8~9월 조사에선 고학력자일수록 정치폭력에 긍정적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사회변화를 위해 폭력이 종종 필요하다고 보나’라는 질문에 대학원 출신의 40%가 ‘그렇다’고 했다. 고졸(23%), 전문대(20%), 대졸(26%) 학력층 응답의 배에 가깝다. 또 ‘부당한 일에 항의할 때 기물을 파손해도 되나’는 문항엔 대학원 출신의 36%가 긍정했다. 다른 학력 집단에선 13~19%에 그쳤다.
이는 소외된 고학력층이 폭력을 변화의 정당한 수단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번 총격범 콜 앨런(31)은 미국 최상위 이공계 대학 중 하나인 칼텍 출신이다. 총을 쏜 범인도, 행사장에서 몸을 피한 공직자와 언론인도 모두 고학력 엘리트 집단이다. 과잉 생산된 엘리트들이 한정된 지위를 두고 격렬하게 경쟁하면서 사회가 불안정해진다는 과학자 피터 터친(69)의 말이 서늘하게 들어맞는 장면 아닌가. 트럼프 시대의 미국에선 그 불안정 징후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작년 좌익테러 건수, 30년만에 우익 앞서
이런 흐름은 특정 진영이나 계층의 문제가 아니다. 체제 전체를 흔드는 불안 요소다. 실제 미국인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 지난해 10월 성인 3445명을 대상으로 한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응답자의 85%가 ‘정치폭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답했다. 폭력의 발원지에 대해선 ‘좌익 극단주의’가 53%, ‘우익 극단주의’가 52%로 비슷했다. 같은 시기 모닝 컨설트의 설문에서도 ‘좌우 어느 쪽이 더 많은 폭력을 저지르나’는 질문에 ‘좌익’ 29%, ‘우익’ 27%의 비율로 나타났다.
과거 정치폭력은 극우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지금은 급진 좌파가 폭력에 가세하면서 진보 진영의 도덕적 우위가 흔들리고 있다.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지난해 좌익 테러 건수가 30년 만에 처음으로 우익 테러보다 많아졌다. 1994~2025년에 걸친 미국의 정치폭력 사례를 분석한 결과다. 우익 테러는 2025년 들어 급격히 감소했는데, 트럼프가 우익 극단주의자의 불만을 일부 해소해줬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우익의 폭력이 사라진 건 아니다. 지난해 6월 미네소타주 하원의장인 민주당의 멜리사 호트먼(1970~2025)이 남편과 함께 자택에서 암살당했다. 혐오엔 혐오, 증오엔 증오로 맞서는 진영 대결은 결국 공멸로 향한다.
게다가 막연히 알려진 것과 달리 미국에선 평화로운 협치의 전통도 그리 강하게 남아 있지 않다. 미국 의회는 지금 역사상 가장 당파적인 상태다. 상원에선 주요 표결의 90% 이상이 당론에 따라 갈린다. 상대 당에 찬성표를 던져 협조한다는 뜻의 ‘크로스 더 아일(cross the aisle)’이라는 말은 거의 사어가 됐다. 특히 이민·인종, 성 정체성, 낙태 등의 민감한 이슈에선 초당적 협치를 찾기 어렵다. 미국정치가 이런 경로의존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누가 되든 다음 대통령 역시 극한직업일 수밖에 없다.
정치가 ‘목숨을 거는 일’이 되는 순간, 건강한 토론은 사라지고 극단주의자들만 남게 된다. 역설적이지만 폭력은 공멸로 이어진다는 공포의 균형이 타협을 이끌 계기가 될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총격 직후 “차이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평소와 달리 통합을 강조했다. 통합의 메시지조차 폭력을 배경으로 해야 나온다는 게 미국의 어두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