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나 범죄 피해처럼 예상하지 못한 충격적인 일을 겪은 사람은 평소 술을 많이 마시거나 알코올 의존 경향이 강할수록 우울 증상이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상원·조성준 교수와 문지완 전공의 연구팀은 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에서 정신건강검진을 받은 한국 직장인 8432명의 자료를 분석해 이같이 확인했다고 5일 밝혔다.
연구팀은 조사 대상자가 경험한 생활 스트레스를 크게 네 가지로 구분했다. 교통사고·범죄 피해·안전사고 등 예상하지 못한 사건과 본인 또는 가족의 질병, 주변 사람과의 갈등, 업무 부담 등 직장 스트레스다. 이어 각각의 스트레스가 우울 증상과 얼마나 관련되는지 살펴보고, 술을 마시는 양이나 알코올 의존 경향에 따라 그 관계가 달라지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여러 스트레스 가운데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경험한 경우 음주 수준에 따른 우울 증상의 차이가 가장 크게 나타났다. 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더라도 평소 음주량이 많거나 알코올 의존 경향이 높은 사람에게서 우울 증상이 더 심했다는 의미다. 반면 질병이나 대인관계 갈등, 직장 스트레스에서는 음주 수준에 따른 차이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연구팀은 교통사고나 범죄 피해처럼 갑작스럽고 통제하기 어려운 사건이 심리적인 충격을 줄 때 술로 고통을 달래려는 대처 방식이 회복을 방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연구는 음주와 우울 증상의 연관성을 분석한 것으로, 술이 우울증을 직접 일으켰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은 아니다.
전상원 교수는 “충격적인 일을 겪은 직후 술을 마시면 단기적으로 신체적·정신적 고통이 줄어드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뇌의 신경생물학적 회복력을 떨어뜨리고 스트레스 조절 능력을 약화해 우울 증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성준 교수는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겪은 사람에게는 상담과 건강한 스트레스 관리, 조기에 음주 문제에 개입하는 프로그램 등 술에 의존하지 않고 회복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은 국제학술지 ‘브레인 사이언스(Brain Sciences)’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