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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한인 독립운동가 20명 또 찾았다

Los Angeles

2026.08.04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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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원대 조사단 공적 발굴
독립자금 지원·항일 활동 확인
왼쪽부터 박자도 선생 묘비. 서수복 선생 묘비. 하와이 코할라 교회 스테인드 그라스에 새겨져 있는 이병준 선생 가족 정보. [국립창원대 한인디아스포라발굴조사단]

왼쪽부터 박자도 선생 묘비. 서수복 선생 묘비. 하와이 코할라 교회 스테인드 그라스에 새겨져 있는 이병준 선생 가족 정보. [국립창원대 한인디아스포라발굴조사단]

하와이 빅아일랜드를 중심으로 활동한 한인 독립운동가 20명의 공적이 새롭게 확인됐다.
 
국립창원대학교 한인디아스포라발굴조사단은 제81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이들에 대한 독립유공자 포상을 국가보훈부에 신청했다고 3일 밝혔다. 이로써 조사단이 발굴해 포상을 신청한 하와이 지역 독립운동가는 총 120명으로 늘었다.
 
빅아일랜드는 초기 한인 이민자들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동하며 정착한 지역이다. 한인교회와 대한인국민회 지방조직이 운영됐으며,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이끈 동지회의 숯공장이 설치되는 등 초기 한인사회의 주요 생활·활동 거점이었다.  
 
본지 역시 지난 2023년 하와이 오아후와 빅아일랜드 등을 방문해 방치돼 있던 초기 한인 이민자들의 묘역을 기획 취재해 보도한 바 있다. 〈본지 2023년 12월 27일자 A-1면〉
 
조사단은 한인 묘역에서 확인한 묘비의 이름과 생몰연도, 가족관계를 토대로 한인신문과 대한인국민회 자료, 독립운동자금 명부, 교회 기록 등을 교차 검토해 이들의 생애와 독립운동 행적을 추적했다.
 
이번 포상 신청 대상자인 박자도 선생(1879~1970)은 1905년 하와이로 이민한 뒤 대한인국민회와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자금을 지속해서 지원했다. 또한 하와이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준비한 대조선독립군단의 단원으로 활동한 사실도 확인됐다.
 
부산 출신인 서수복 선생(1899~1964)은 1919년 4월 30일 ‘사진신부’로 하와이에 이민해 김경식 선생과 혼인했다. 혼인 후 남편의 성을 따라 김수복으로도 불렸다. 서 선생은 1947년 힐로부인회 회장과 1949년 힐로 부인국민회 지방회장을 맡아 빅아일랜드 한인 여성사회를 이끌었다.
 
특히 서 선생은 1937년부터 1960년까지 부인구제회 의무금과 혈성금, 독립금, 전후한국구제회 구제금, 본국 수재민 구휼금 등을 꾸준히 지원했다. 광복 이후에도 조국 재건과 구호를 위한 기부를 이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이병준 선생(1886~1951)은 빅아일랜드 코할라 지역에서 대한인국민회 활동을 이끌며 독립운동자금과 조국재건자금을 지원했다. 현재 코할라 한인교회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이 선생과 아내 김필애, 아들 이윤일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박민원 국립창원대 총장은 “빅아일랜드 묘비에서 이름을 찾고 흩어진 기록을 연결하면서, 농장에서 일하며 정착한 평범한 이민자들의 일상이 곧 독립운동의 기반이었음을 확인했다”며 “조국의 독립과 재건을 위해 헌신하고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한인 디아스포라의 삶과 공적을 끝까지 찾아내겠다”고 밝혔다.
 
한편 조사단은 오는 30일까지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도 조사를 벌여 한인 디아스포라의 삶과 독립운동 행적을 추가로 발굴할 예정이다.

강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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