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연합뉴스
최근 일본 외교 관계자들 사이에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다음 정상회담이 언제 성사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오는 11월 중국 광둥성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양국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 이후, 중국 정부는 다카이치 정부를 향해 ‘신형 군국주의’라며 맹비난을 계속하고 있어, 대화에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중국 위협론’을 과장해서 퍼뜨리고 있다. 이는 완전히 적반하장격으로, 우리는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단호히 반대한다.”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4일 늦은 밤, 이날 다카이치 정부 출범 이후 처음 발간된 일본 방위백서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전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그는 다카이치 정권이 추진하는 국가안전보장전략 개정이나 국방비 증액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일본의 ‘신형 군국주의’가 세력을 형성해 폐해를 낳고 있다”면서 “일본 측이 침략 역사를 깊이 반성하고 중국 내정에 대한 간섭을 중단하며, ‘재군사화’라는 잘못된 길로 더 이상 나아가지 말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일본 국가정보국 설립 관련 법안이 국회 중의원을 통과하자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인사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신형 군국주의’는 최근 중국이 다카이치 정권을 비판할 때 사용하는 핵심 키워드다. 과거의 역사를 상기시키며 일본이 또다시 지역의 위협이 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선전선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31일 일본 정부가 국가정보국을 출범시킨 것에 대해서도 중국 외교부는 “역사적으로 일본의 정보기관은 군국주의의 전면적 추진과 대외 침략 전쟁 발발의 길을 열어, 아시아 인근 국가들과 일본 국민에게 셀 수 없이 많은 죄를 저질러 왔다”고 비판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에서 APEC 계기 중·일 정상회담 준비 상황에 대한 질문에 “일·중 간에 우려와 과제가 있는 만큼 다양한 기회를 통해 대화를 나누고 의사소통을 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면서 “APEC 정상회의를 기대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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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테기 “왕이와 이야기 나눴다”...중국 즉각 부인
그런데 정상회담은커녕 그 ‘전초전’격인 외무장관 회담조차 성사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상이 지난달 23일 마닐라에서 열린 국제회의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어제 왕이 외교부장과 우연히 마주치며 접촉할 기회가 있었다”며 “짧은 시간 동안 인사를 나누고 양국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지난 5월 6일 중국 베이징에서 왕이(오른쪽) 중국 외교부장이 아바스 아라그치(왼쪽) 이란 외교부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짧은 대화조차 전혀 없었다”며 즉각 부인했다. 일본 외무성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들어 실무자를 포함한 양국 간 고위급 협의는 단 한 번도 열리지 않고 있다.
와타나베 쓰네오(渡部恒雄) 사사카와 평화재단 수석 펠로우는 “시 주석은 다음 달 예정된 방미 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 구축에 주력하고 있어, 현재 일본과 정상회담을 할 이유가 없다”며 “일·중 관계가 악화됐을 때, 예전에는 중국과의 유대가 두터운 공명당이 연립여당으로서 역할을 해왔다. 그들이 연립에서 이탈한 영향이 크며, 여당인 자민당 내에선 지금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치인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카이치 총리는 미·중 관계를 주시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신뢰 관계 구축을 위해 전화 통화를 자주 해야 하는데, 그러한 전략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3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구마모토 지진 대피소를 찾아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러한 중국의 강경한 태도는 자연재해 대응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28일 발생한 구마모토 지진에 대해 중국 정부의 위로 표명은 외교부 보도국장 수준에 그쳤다. 10년 전 구마모토 지진 당시 시 주석이 아키히토(明仁) 천황에게, 리커창 총리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각각 조의 전보를 보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해 11월 이후 경제적 보복 조치로 중국 정부가 국민들에게 내린 일본 방문 자제령도 지속되고 있다. 일본 정부 관광국에 따르면, 올해 1~6월 방일 중국인은 약 206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56% 급감했다. 한국, 서양권 등 다른 국가에서 온 관광객이 대폭 증가함에 따라, 전체 방일 관광객은 약 2108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 감소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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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별개…일본 유학 열기 여전
2026년 7월 3일 일본 후쿠오카 다자이후 덴만구에서 소문이 쓰여진 에마가 걸려 있다. 한국어와 중국어로 쓰인 것도 많았다. 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한편, 양국 관계 악화는 중국인들의 일본 유학 열기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이후 일본 유학 자제령도 내렸으나, 지난 5월 현재 도쿄대 중국인 유학생 수는 총 3457명으로 전체 유학생의 64.2%를 차지했다. 1년 전 3486명과 큰 차이가 없다. 도쿄대에는 특히 대학원생이 많다.
4년제 학부에 유학생이 많은 와세다대의 경우 5월 현재 중국인은 832명으로, 전체 유학생의 37.4%에 달했다. 1년 전엔 838명으로 역시 동일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중국인 유학생을 위한 전문 학원 ‘고치가쿠엔(行知学園)’ 관계자는 내년 2월에 치러질 입시와 관련해 “도쿄대를 비롯한 명문대 진학 상담 및 문의 건수, 수험생들의 관심도는 예년과 큰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중국의 대학 입시는 일본보다 경쟁이 치열하고, 대졸 취업률은 일본이 훨씬 높다. 따라서 교육 분야만큼은 양국 관계 악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단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