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구에 사는 서정배(65) 씨는 지난 3월부터 구청 소속 상수도 보호구역 감시원으로 근무 중이다. 작년엔 5개월간 파크골프장 시설관리인으로 일하기도 했다. 33년간 군무원 생활을 하다 2018년 퇴직한 서씨는 이후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활용해 관련 기관에 재취업하려 수십 곳 면접을 봤지만 낙방했다. 경비ㆍ청소도 해봤지만 적성에 맞진 않았다. 서씨는 “면접관들에게 사회복지 업무는 젊은 지원자도 많아 어르신을 채용하기 어렵단 말을 자주 들었다”며 “아쉽지만 단기 일자리라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도전해서 70세까지 일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대구 동구청 소속 상수원보호구역 감시원 서정배(65)씨가 5일 근무지인 공산댐상수원 보호구역 순찰을 돌고 있다. 송봉근 객원기자
대기업 자동차 연구원 출신인 임홍열(61) 씨도 경력을 활용해 재취업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고 호소한다. 임씨는 “자동차 관련 중견ㆍ중소기업 면접에서 대기업 출신이라 부담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아예 경력과 무관한 게임회사 계약직도 해봤지만, 직업 안정성이나 적성을 고려하면 역시 자동차 업계에서 일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자율주행차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기대 수명 증가에 따라 가급적 오래 일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는 ‘신(新) 호모라보란스(Homo laborans, 평생 노동하는 인간)’ 시대다. 특히 일할 의지와 능력을 갖춘 ‘젊고 똑똑한 노인(젊똑노)’이 급증하고 있다.
5일 국가데이터처 고령층부가조사에 따르면 올해 고령 취업자 수는 처음으로 1000만명대를 돌파했다. 지난 5월 기준 55~79세 취업자는 1012만5000명으로 전년 대비 34만5000명 늘었다. 주된 일자리 퇴직 연령은 53세인데, 고령층 10명 중 7명(69.2%)은 73.6세까지 계속 일하기를 희망한다고 답했다.
박경민 기자
‘요즘 노인’은 이전보다 학력 수준이 높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1차 베이비부머(1955~63년생) 705만명의 대졸 이상 비율은 26.2%로 이전 세대의 두 배 이상이다. 학력이 더 높고 노동 이력이 긴 2차 베이비부머(1964~74년생) 954만명까지 고령기에 진입하면 이른바 ‘젊똑노’가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된다. 노동시장 참여 의지도 강하다. 65~79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05년 36.3%에서 올해 48.9%로 12.6%포인트 상승했다. 55~64세 경활률도 같은 기간 62.3%에서 73.1%로 높아졌다.
하지만 숙련도와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양질의 노인 일자리는 부족한 실정이다. 중앙일보가 고용행정통계를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고용24를 통해 구직 신청한 60대 57만명 중 21만명만 재취업에 성공했다. 그중 절반이 돌봄(25.2%), 청소(21.1%) 분야였고, 경호ㆍ경비(10.7%)가 뒤를 이었다. 데이터처 통계를 봐도 지난 5월 기준 65세 이상 고령 취업자(411만8000명)의 33%가 단순노무직에 종사하고 있다. 어르신 아르바이트도 증가하는 추세다. 알바천국이 최근 10년간 지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올해(1~5월) 전체 아르바이트 지원자 중 50대 이상 비중이 9.3%였다. 2017년(2.2%)의 4배 이상으로 늘었다.
박경민 기자
주된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순간 이들의 경력 가치는 급격히 손실되고 임금도 하락한다. 지난 6월 국회미래연구원이 발간한 ‘고령층은 왜 계속 일하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1차 베이비부머의 상용직 비중은 60대 초반 55.2%에서 60대 후반 이후 45%로 내려앉았다. 상용직의 27.8%가 월 300만 원 이상을 받는 반면 임시ㆍ일용직에서는 같은 구간이 9.2%에 불과, 대부분 월 100만원 미만 저임금에 머물렀다.
결국 체계적인 재취업 준비 여부가 노후 삶의 질을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보안업체인 삼성에스원에서 38년을 일한 후 2022년 퇴직한 하윤수(64) 씨도 처음엔 준비 없이 스무 군데 이력서를 냈다가 서류 탈락에 자신감을 잃었다. 하지만 중장년내일센터를 통해 인턴십 경력 등을 쌓아 이듬해 한 사회적 기업에 재취업했다. 현재는 전문성을 살려 일반경비원 신임교육(법정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전국의 중장년내일센터 40곳에서 배출한 취업자 중 60세 이상 비중은 지난해 49.9%로 절반에 달한다. 노동부는 중장년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를 위해 중장년내일센터를 일대일 맞춤형 ‘경력개발센터’로 확대ㆍ개편한다는 방침이다. 중장년층 재취업지원서비스 의무사업장도 현재 1000인 이상에서 내년 500인 이상, 2029년 30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해 나간다.
전문가들은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중장년 인력 활용의 중요성이 더 커질 것으로 본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단기ㆍ저임금 중심의 공공일자리로 중장년 취업 건수만 늘리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며 “이들의 축적된 경험과 기술을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하려면 경력과 희망직무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또 기업이 정년 연장이나 퇴직 후 재고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