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 시인이 지난달 31일 강화 분오어판장 앞 갯벌에 놓인 닻 옆에 섰다. 그는 “다음 시집은 3년 안에 내겠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인천 강화도에 진입하기 위해 강화초지대교를 건널 때 작은 갯벌이 드러났다. 갈 곳 없는 배들은 물이 밀려난 바닥에 박혀 있었고, 여러 개의 등허리처럼 드러난 펄은 지구의 속살 같았다.
과거 함민복 시인은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발을 잡아준다’며 갯벌의 ‘말랑말랑한 힘’(‘뻘’)을 얘기했다. 갯벌은 도시와 대비되는 부드러운 생명력의 공간이었다. 그런 그가 지난달 30일 13년 만에 낸 시집 『물빛인쇄소』(창비)에선 갯벌에서 발생한 죽음을 썼다. 계기가 궁금했다. 함 시인을 만나러 지난달 31일 강화에 갔다.
약속 장소에 나온 함 시인은 왼쪽 눈두덩을 더듬었다. “하필 오늘 다래끼가 나서…. 40년 만인 거 같다”고 했다.
시 ‘모시조개’부터 물었다. ‘뻘 속에 발목을 묻고/조개를 잡아온 지 육십여년’ 된 연백댁(북한 연백에서 온 여자)이 밀물에 갇혀 갯벌에서 죽게 되는 이야기다. 이 여인은 ‘스스로 하는 염습, 수직의 염습’을 거쳐 ‘꼬르륵!/모시조개처럼 숨을 쉬어’보고 죽음을 맞이한다.
함 시인은 “조개를 잡으러 다니던 26년 전에 들은 얘기”라며 “‘뻘’(개흙의 방언)에서 사람이 죽으면 동네 사람들이 끌고 나오는데, 뻘 위에 길게 자국이 남는다. 그 자국을 다음날 낙지 잡으러 가는 사람이 밟고 가야 한다. 그 이야기가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다”고 말했다.
이번 시집은 죽음에 대한 고민이 짙게 어른거린다. 2022년 반려견 길상이의 죽음도 ‘임종’이라는 시에 ‘한 덩어리가 죽어간다’고 썼다.
다만 시인은 죽음에 두려움을 내비치진 않는다. ‘죽은 나무에는 죽음이 살아 있’고 ‘삶을 비춰주는 죽음 한그루’(‘죽은 나무’)라고 쓴다. 2년 전 호흡 곤란으로 스텐트 시술을 받았던 함 시인은 그동안 써왔던 시들을 정리하며 죽음도 대비했다. 그럼에도 ‘모양이 왕관을 닮아 관상(冠狀)동맥이라 부른다네요’라며 ‘박물관처럼 왕관을 품고 살아왔지 뭐예요’(‘왕관’)라고 상황을 긍정한다.
이번 시집에서 두드러지는 상징은 화살표다. ‘화살표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달린 10편의 연작시가 담겼다. ‘화살표의 힘은 앞으로 쏠려 있어/화살표의 뒤쪽은 언제나 쓸쓸하다’와 같은 시구는 제 목소리만 키우는 시대상을 담았고, ‘화살표는 문(門)이다’라며 소통 가능성도 고민한다.
함 시인은 닻에서 화살표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는 “닻은 (모양은) 가라고 하는데 (목적은) 가지 말라고 잡는 화살표”라고 말했다. 닻을 보러 분오어판장에 함께 갔다. 함 시인이 닻 옆에 섰다. 그 뒤로 한여름 갯벌은 아득했고, 바다는 갯벌이 끝나는 곳까지 물러나 있었다. 닻은 화살표 모양으로 함 시인을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