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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의 신영웅전] 학자의 청빈 실천한 김영두 교수님

중앙일보

2026.08.05 08:04 2026.08.0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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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나는 부처님의 말씀 가운데 인연을 소중히 여기라는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왔다. “인생에는 끊어야 할 것도 없고, 영원히 사라지는 것도 없다.”(『금강경』 27)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알 수 없기에, 헤어지는 인연일수록 더욱 귀히 여겨야 한다.

나는 살아오며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무엇보다 훌륭한 스승들을 만난 것을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잊히지 않는 분이 고려대학교의 김영두(金永斗·1916~1991·사진) 교수님이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오늘날과 달리 배우고 싶은 교수가 있으면 학교를 가리지 않고 찾아가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그분에게 학위 논문 지도를 받았다. 나는 동학(東學)을 공부하면서 김영두 교수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교수님은 합천 출신으로 일본 규슈제국대학에서 수학하신 분이었다. 강의는 쉽지 않았지만 언제나 진지했다. 내가 석사학위 논문을 마쳤을 때, 교수님은 원고를 직접 검토하시겠다며 댁으로 오라 하셨다. 집으로 부르신 것은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혹한에도 연구실에 난방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물어물어 돈암동 산비탈에 있던 교수님의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분의 공부방에 들어서는 순간 충격을 받았다. 바깥은 한겨울이었고, 홑겹 문풍지뿐인 방 안은 냉방이었다. 사과 궤짝 같은 상자에 신문지를 덧붙여 책상 대신 사용하셨다. 나는 그날 학자의 청빈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살아오며 돈의 유혹을 받은 일이 어찌 한두 번이었을까마는, 내가 크게 허물 되지 않고 살아온 것은 그날의 가르침 덕분이다.

지금 세상에 학자는 반드시 청빈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학자의 방은 조금 추워야 한다. 먹고살 만한 시대에 쓴 글들이, 단칸 셋방에서 추위에 떨며 쓴 글만큼 울림을 주지 못할 때면 나는 문득 김영두 교수님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리워한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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