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김성재의 마켓 나우] 100년 전 라디오의 경고, AI는 듣고 있나

중앙일보

2026.08.05 08:08 2026.08.05 13:35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 『관세 이야기』 저자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 『관세 이야기』 저자

기술 혁명 앞에서 투자자 심리는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1895년 이탈리아 발명가 굴리엘모 마르코니는 무선 신호 송신에 성공했고, 1901년에는 대서양 횡단 통신 시대를 열었다. 그가 상용화한 SOS 신호는 1912년 타이태닉호 705명의 목숨을 구했다.

영국에 본사를 둔 마르코니 무선전신 회사는 전 세계를 연결하는 무선 통신망을 구축했다. 미국에도 과반 지분을 보유한 아메리칸 마르코니사를 설립해 대서양 횡단 통신과 연안 통신을 사실상 독점했다.

이를 안보 위협으로 판단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제너럴일렉트릭(GE)을 앞세워 이 회사의 미국 내 자산을 인수토록 했다. 1919년 11월 GE는 아메리칸 마르코니사를 재편해 RCA를 출범시켰다.

1921년 7월 RCA는 헤비급 복싱 챔피언전을 사상 최초로 라디오로 중계했다. 아나운서의 음성은 미 동부 주요 도시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되었다. 4라운드에서 미국 선수 잭 뎀시가 KO승을 거두자 30만 명 인파가 거리로 쏟아졌다.

경기 다음 날 백화점에는 라디오를 사려는 줄이 늘어섰다. RCA 주가도 덩달아 뛰었다. 1921년 주당 1.5달러 안팎에 머물던 RCA 주식은 몇 년 후 RCA 주도로 NBC가 설립되자 25달러로 치솟았다.

1927년 8월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하자 유동성이 대거 증시로 유입되었다. 미디어·기술 산업 주도주였던 RCA 주가는 1929년 9월 573달러까지 올라섰다. 8년 만에 380배 오른 셈이다.

극단적인 레버리지(차입 투자)가 기폭제로 작용했다. 증거금 10%만 넣으면 나머지를 증권사에서 빌려 10배의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었다. 구두닦이에서 교사까지 전 국민이 빚투로 증시에 몰렸다.

연준은 1928년부터 금리를 인상했다. 투기 광풍이 멈추지 않자 연준은 주식담보 대출까지 규제에 나섰다. 은행이 대출을 회수하자 RCA 주가는 26달러로 수직 낙하했다. 1932년 RCA 주가는 2.5달러까지 떨어졌다.

RCA의 궤적은, 최근 AI 붐을 탄 반도체 주식을 떠올리게 한다. AI 관련 대장주 엔비디아 주가는 2016년 주당 1.5달러 안팎에 거래되었으나, 데이터센터와 인프라 투자가 본격화하면서 한때 240달러에 육박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반도체 주가도 급등 행렬을 펼쳤다. 문제는 이번에도 과도한 레버리지다. 1929년처럼 일반 투자자의 과도한 빚투는 증시 붕괴로 이어진다. 아무리 위대한 기술도 무리한 베팅을 감행한 투자자까지 구할 수 없다. 위험관리 능력과 투자 규모에 따라 레버리지를 규제해야 하는 이유다.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 『관세 이야기』 저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