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공건축 설계공모를 보면 떠오르는 말이다. 설계비 2억원 남짓한 공모에 30여 개의 건축사 사무소가 뛰어든다. 각각의 사무소는 계획안을 만들기 위해 한두 달의 시간을 쏟아붓는다. 참여한 사무소들이 투입한 인건비만 단순 합산해도 설계비를 훌쩍 넘는다. 개별 사무소로선 어쩔 수 없는 생존 전략이겠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비효율이다.
도시 수준 드러내는 공공건축
건물 짓는 데 수천억 쓰면서도
설계 공모·심사 지나치게 촉박
좋은 건축, 깊은 검토에서 나와
김지윤 기자
이 문제를 단순히 건축계의 과도한 경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공공건축이 우리 사회에 주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한 해에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설계공모는 1000여 건에 이른다. 2014년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이 시행되면서 현재 설계비 1억원 이상의 공공건축은 설계공모가 의무화되었다. 이 수많은 공모를 통해 어떤 안이 선택되는가는 우리 도시 풍경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비용과 노력이 투입되는 데 비해 정작 설계안을 검토하고 선택하는 과정은 지나치게 짧다. 무엇을, 왜, 어떻게 지을 것인지 충분히 고민하기도 전에 공모가 시작되고, 수많은 고민과 작업 끝에 완성된 수십 개의 설계안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운명이 결정되기도 한다. 배보다 배꼽이 큰 경쟁보다 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기획과 선택에 인색한 공공건축 시스템이다.
‘좋은 건축은 좋은 계획안에서 시작된다’는 말은 공공건축에서는 절반만 맞다. 좋은 공공건축은 뛰어난 계획안을 제대로 가려낼 수 있는 설계공모에서 시작된다. 아무리 훌륭한 제안도 선택되지 못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토교통부와 건축 관련 5개 단체는 ‘공공건축 설계공모 공정성 제고 방안’을 공동 발표했다. 심사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고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핵심이다. 특히, 건축물의 용도와 관련된 경험을 고려해 심사위원을 위촉하고 현장답사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담겼다. 의미 있는 개선이다. 그러나 대책의 무게중심은 여전히 ‘누가, 어떻게 공정하게 심사할 것인가’에 놓여 있다. 정작 수십 개의 설계안을 얼마나 충실히 검토할 것인지, 그에 걸맞은 심사 여건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절차 공정성만 강조하는 심사 구조 우리는 공정성을 주로 ‘사람의 문제’로 이해한다. 그래서 익명성과 중립성을 확보하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절차적 공정성이 심사위원의 좋은 판단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심사위원이라도 충분한 시간과 토론 없이 수십 개의 제출안을 제대로 검토하기는 어렵다. 심사의 질은 개인의 역량만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에서 결정된다.
수십 개의 제출안을 심사하다 보면 늘 스스로 묻게 된다. 정말 좋은 안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 더 나은 가능성을 놓친 것은 아닌지, 그리고 내 판단이 지나치게 주관적인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래서 공정성은 개별 심사위원의 편향 가능성을 무조건 부정하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드러나고 검증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건축은 원래 정답이 없는 분야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옳은가’보다 ‘왜 그렇게 판단했는가’를 드러내는 과정이 중요하다. 좋은 심사는 만장일치가 아니라 서로 다른 관점이 충돌하고 조정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설계안은 단순한 시험 답안이 아니라 도시와 우리의 삶에 대한 해석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건축가가 이 무모한 경쟁에 뛰어드는 이유는 분명하다. 설계공모 제도가 공공 프로젝트에 접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심사가 공정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최소한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그 공정성을 지키려고 만든 장치가 판단의 깊이를 얕게 만들기도 한다.
심사위원들이 충분히 읽고, 비교하고, 토론하며 서로의 편향을 수정할 시간을 갖지 못한다면 결국 가장 쉽게 읽히는 안이 살아남는다. 짧은 시간 안에 판단해야 할수록 복잡한 맥락과 관계보다는 눈에 띄는 형태와 상징이 선택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어진 공공건축은 ‘우리 동네의 자랑거리’라는 이름으로 소비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도시의 맥락과 분리된 채 박제된 이미지로 남게 된다. 우리가 반복해서 보아온 우리 도시의 안타까운 풍경이다.
최근 대통령 세종 집무실 설계공모는 당선작의 적절성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을 낳았다. 당선안을 두고 국격에 걸맞은 건축인지, 상징성과 전통성을 충분히 담아냈는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그러나 이번 논란이 던지는 더 근본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공공건축을 기획하고 선택하는 과정에 과연 충분한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몇 시간 심사로 도시의 수십 년 결정 공공건축은 규모가 크건 작건 한 도시의 수준을 드러내는 기준이 된다. 도서관과 학교, 복지시설 같은 작은 공공건축은 시민의 일상을 만들고, 수천억원이 투입되는 대형 공공 프로젝트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에 걸쳐 도시의 이미지와 정체성을 결정한다. 그런데 우리는 건물을 짓는 데에는 수천억원을 쓰면서도 무엇을 지을지 결정하는 과정에는 놀랄 만큼 인색하다. 짧은 기획, 촉박한 공모 일정, 불과 몇 시간의 심사로 도시의 수십 년을 결정하기도 한다.
좋은 공공건축은 좋은 설계안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무엇이 필요한지 충분히 묻고 고민하는 기획, 공모의 목표와 조건을 정교하게 조율하는 합의 과정, 그리고 제출된 안을 깊이 있게 검토하고 토론하는 심사의 구조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현재 우리는 누구에게도 문제 되지 않는 절차를 만드는 일에 집중한 나머지, 정작 무엇이 더 좋은 안인지 충분히 논의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공건축 설계공모에서 ‘배보다 배꼽이 큰 것’은 ‘경쟁’이 아니라 ‘절차를 우선하는 제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