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내 재임 시기 부동산 시장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특히 전임 정부 때 폭등했던 서울 강남의 집값이 하락하고 국민의 주거 환경은 개선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후 수도권 집값은 크게 오르며 많은 국민에게 무거운 부담이 되고 있다.
나는 그 이유를 오래 생각해 왔다. 이번 회에서는 내가 부동산 정책을 추진하며 끝까지 지키려 했던 원칙과 집값 안정을 가능하게 했던 핵심 요인, 그리고 이후 부동산 정책이 왜 어려움을 겪게 되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내 부동산 정책은 대통령이 된 뒤 새롭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 출발점은 서울시장 시절의 경험과 정책에 있었다. 바로 ‘뉴타운’ 사업 말이다.
내 서울시장 임기의 상당 부분은 노무현 정부와 겹친다. 이른바 서울 강남 지역을 비롯한 선호 지역의 집값이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기 시작했을 때다. 상대적으로 서울 강북 지역으로 대표되는 비선호 지역의 집값은 정체 기미를 보이면서 강남과 강북의 집값 양극화 현상이 본격화했다.
2026년 8월 3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내려다본 서울 강남 지역 아파트 단지. 강남과 강북의 아파트 가격 격차가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한 건 노무현 정부 때였다. 연합뉴스
한번 벌어진 격차는 갈수록 커졌다. 앞으로 어느 곳의 집값이 오를지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강남으로 몰리면서 강남의 집값은 더 오르고, 외면받은 강북 집값은 그 자리에 못 박힌 채 움직일 줄 몰랐다.
이걸 해결하려면 강남 수요를 줄이고 강북 수요를 늘려야 했다. 그러자면 강북을 인기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했다. 앞서 서울숲 조성 과정을 설명하면서 언급한대로 내가 볼 때 강남·북의 격차는 인프라와 생태 환경의 차이에서 기인했다. 내가 강북 지역인 성수동에 서울숲을 만들고 주변 교통 인프라를 크게 개선한 것도 이런 격차를 줄여 강북을 발전시키기 위해서였다.
그 일환으로 나는 강북에 뉴타운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시장 시절의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 이명박대통령기념재단
뉴타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내가 부동산 정책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닫게 된 한 가지 일화부터 소개하고자 한다.
남루한 그 할머니의 뜻밖 하소연
낭패였다. 그날따라 다소 늦게 교회에 도착한 나는 지각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미 예배가 시작된 뒤라 빈자리가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사방팔방을 살피던 내 눈에 기적처럼 빈자리 몇 개가 들어왔다. 나는 급히 그 자리로 가 착석했다.
한숨 돌린 뒤 주변을 살피던 나는 그제야 왜 그 자리가 비어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옆자리에 남루한 옷차림의 여성이 앉아있었다. 낡은 트레이닝복에 다 해진 운동화를 걸친 그에게서는 냄새까지 났다. 그래서 신도들이 앉기를 피해 옆자리가 비어있는 것 같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니는 교회의 예배 모습. 중앙포토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 여성이 빈손인 걸 보고는 찬송가 책을 보여주면서 같이 노래하자고 권했다. 그는 나의 행동에 놀란 표정이었다.
그렇게 예배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데 그 여성이 보였다. 그는 쭈뼛쭈뼛하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 시장님, 사실은 제가 시장님을 뵙기 위해 시장님이 다니신다는 교회를 수소문해서 왔습니다. 죄송하지만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