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술자리는 예전 같지 않다. 다 같이 취하기보다 적당히 마시거나, 아예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늘었다. 술의 맛과 분위기는 즐기되 취하고 싶지 않은 수요가 생겨나면서 무알코올·논알코올 맥주도 빠르게 시장을 넓히고 있다.
주류시장 분석기관 IWSR이 지난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세계 주류 판매량은 전년보다 2% 감소하며 3년 연속 줄었다. 전체 맥주 판매량도 2% 감소했지만 무·논알코올 맥주는 8% 성장했다. 술을 완전히 끊기보다 상황에 따라 덜 마시는 소비 방식이 퍼진 영향이다.
애슬래틱 브루잉의 논알코올 맥주 제품들. 알코올 도수는 0.5% 미만이다. 사진 Athletic Brewing Company 홈페이지 캡처
한국에서도 카스 올제로와 하이트제로 0.00, 테라 제로 0.00 등 대형 주류회사의 무·논알코올 제품이 잇따라 등장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알코올을 넣지 않은 제품을 ‘무알코올’, 알코올 함량이 1% 미만인 제품을 ‘논알코올(비알코올)’로 구분한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무·논알코올 맥주 시장은 2024년 704억원에서 2027년 956억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시장이 조심스레 가능성을 타진하는 동안 미국에선 아예 논알코올 주류 브랜드가 등장했다. 기존 맥주에 논알코올 버전을 추가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알코올 도수 0.5% 미만의 논알코올 맥주만 만들겠다고 나선 전문 양조장 ‘애슬래틱 브루잉(Athletic Brewing)’이다.
월가 금융맨 출신 빌 슈펠트와 양조사 존 워커가 만든 애슬래틱의 특별한 점은 단순히 맥주에서 알코올을 뺀 데 있지 않다. 논알코올 맥주를 ‘술을 참는 사람이 마시는 대체품’이 아니라 ‘일상의 시간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필요한 맥주’로 다시 정의했다. 어쩔 수 없이 고르는 맥주가 아니라, 기꺼이 고르고 싶은 맥주라는 얘기다.
편의점 냉장고에 카스 올제로, 클라우드 논알콜릭, 테라 제로 0.00, 하이트제로 0.00 등 무·논알코올 제품이 진열돼 있다. 중앙포토
2018년 처음 제품을 내놓은 애슬래틱은 2024년 매출 1억3000만 달러(1850억원)를 넘겼다. 같은 해 투자 유치 과정에서 평가받은 기업가치는 약 8억 달러(당시 약 1조원)였다. 미국 소매점에서는 하이네켄 0.0과 버드와이저 제로를 제치고 무·논알코올 맥주 판매 1위(2024년 기준) 브랜드로 올라섰다.
술자리가 일상이던 금융맨, 빈자리를 발견하다
애슬래틱의 출발점은 결핍에 가까웠다. 월가에서 일하던 슈펠트는 업무 뒤 술자리가 잦았고, 숙취로 주말을 흘려보내곤 했다. 그는 운동과 일에 집중하기 위해 2013년 술을 끊었다.
몸 상태는 좋아졌지만, 식당과 바, 스포츠 경기장에서 어울릴 때 마실 만한 음료가 없었다. 물과 탄산음료로는 맥주가 주던 맛과 분위기를 대신하기 어려웠다. 당시 미국 무·논알코올 맥주는 선택지가 적었고, 그마저도 맛없는 대체품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애슬래틱 브루잉 공동 창업자 존 워커(왼쪽)와 빌 슈펠트. 양조 전문가인 워커와 금융회사 출신 슈펠트는 2017년 회사를 세웠다. 사진 Athletic Brewing Company 홈페이지 캡처
슈펠트는 시장이 작은 이유가 수요 부족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제품이 없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약 200명의 양조 전문가에게 사업 구상을 알린 끝에 양조사 존 워커를 만나 공동 창업했다.
두 사람은 일반 맥주에서 알코올만 제거하는 대신 양조 전반을 다시 설계했다. 수백 차례 시험한 끝에 처음부터 알코올 생성을 억제하는 자체 공정을 개발했고 2018년 미국 코네티컷주 스트랫퍼드에 논알코올 맥주 전용 양조장과 탭룸을 열었다.
애슬래틱 브루잉의 야외 공간 보존 프로그램 ‘투 포 더 트레일스’ 활동 참가자들이 논알코올 맥주를 즐기는 모습. 사진 Athletic Brewing Company
첫 제품도 무난한 라거가 아니었다. ‘런 와일드 IPA’와 ‘업사이드 던 골든’처럼 이른바 ‘크래프트(수제 맥주) 스타일’을 앞세웠다. 이후 라이트 맥주와 다크에일, 사워 등으로 종류를 넓혔다. 슈펠트는 “대부분의 사람은 숙취 때문에 일주일에 하루만 술을 마신다”며 “우리는 나머지 요일에도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부담 없지만 맛있는 맥주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제로’ 내세우지 않고, ‘활동’ 강조했다
제품만큼 선명했던 것은 논알코올 맥주를 말하는 방식이었다. 브랜드 이름부터 ‘제로’나 ‘소버(sober·술을 마시지 않는)’가 아닌 ‘애슬래틱(Athletic·활동적인)’이다. 마시지 못하는 이유보다 마신 뒤에도 계속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췄다.
마케팅 무대도 술집이 아니라 러닝과 사이클, 철인경기 현장이었다. 세계적인 철인경기 대회 아이언맨과 손잡고 현장에서 제품을 나눠주고 수상자들이 시상대에서 애슬래틱 맥주로 건배하는 장면을 만들었다. 금주자의 아쉬운 대체 음료가 아니라 운동을 마친 사람이 선택하는 긍정적 보상으로 맥주의 위치를 바꾼 것이다.
2026년 7월 미국 뉴욕주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열린 아이언맨 대회 남자부 수상자들이 시상대에서 애슬래틱 브루잉의 논알코올 맥주 캔을 여는 모습. 왼쪽부터 2위 매슈 마쿼트, 우승자 마르턴 판 리얼, 3위 벤 카누트. 사진 아이언맨 공식 유튜브 캡처
야외 공간 보존 프로그램 ‘투 포 더 트레일스’를 통해서는 트레일과 공원 복원 사업 등에 누적 841만 달러 이상을 지원했다. 제품과 스포츠 후원, 사회공헌이 모두 ‘밖으로 나가 움직이는 삶’이라는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된다.
무엇보다 애슬래틱은 스스로를 일반 맥주의 값싼 대체재로 취급하지 않았다. 공식몰 기준 주력 제품은 6캔에 10.99달러, 일부 제품은 14.99달러로 프리미엄 크래프트 맥주와 비슷한 가격을 매겼다. 일반 맥주와 맛이 완전히 같지 않다는 평가도 있지만, 애슬래틱은 가격 경쟁 대신 취향에 따라 고르는 독립적인 맥주로 포지셔닝하는 전략을 택했다.
작은 틈새에서 맥주의 성장축으로
무·논알코올 맥주의 성장세가 빠르지만, 아직 시장의 중심이 된 것은 아니다. 2025년 기준 무·논알코올 맥주가 미국 전체 맥주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불과하다. 2021년 1.1%에서 배 이상 커졌지만 절대 규모는 여전히 작다.
이는 반대로 확장 여지가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IWSR은 맥주와 와인, 증류주 등을 포함한 미국 무·논알코올 시장이 2024년부터 2028년까지 연평균 18% 성장해 2028년 약 50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슈펠트는 무·논알코올 맥주가 장기적으로 전체 맥주 판매의 절반까지 차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회사 대표의 낙관적인 전망이지만 대형 주류회사들도 관련 제품을 늘리며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하이킹을 즐기며 애슬래틱 브루잉의 논알코올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애슬래틱은 제품을 술자리가 아닌 야외활동과 운동 후의 순간에 연결해왔다. 사진 Athletic Brewing Company
국내서도 이미 비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하이트진로·오비맥주 등 국내 대형 주류회사는 익숙한 브랜드를 바탕으로 무·논알코올·라이트 제품군을 넓히고, 러닝과 마라톤을 새로운 마케팅 무대로 삼고 있다. 애슬래틱은 아직 국내에 공식 수입·유통되지 않지만, 서로 다른 시장에서 벌어지는 장면은 꽤 닮아있다.
술을 덜 마시는 시대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이제 경쟁은 도수 싸움이 아니다. 무엇을 뺐는지가 아니라, 그 빈자리에 무엇을 채우는지가 관건이다. 애슬래틱이 알코올을 빼고 늘린 것은 맥주를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b.멘터리
오늘날 브랜드는 개인의 가치관을 담는 중요한 소비 기호죠. 치열하게 ‘자기다움’을 직조하는 브랜드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남다른 브랜드의 흥미로운 디테일을 따라 가며 설레는 여정을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