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에 불을 올리는 광저우 딤섬집, 훈기와 기름 연기가 뒤섞인 쓰촨 식당 뒷골목, 열두 명이 어깨를 맞대고 일하는 상하이 호텔 주방… 그 모든 곳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풍경이 있다. 웍을 쥔 손, 불꽃 위를 날아다니는 식재료, 그리고 요리사의 구슬 같은 땀방울.
그런데 이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조리로봇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메뉴 버튼만 누르면 ‘학습’된 데이터로 조리하는 조리로봇. 바이두
중국 외식 체인 샤오차이위안(小菜園)은 전국 660개 매장에 조리 로봇을 들여놨다. 현재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인 이 회사는 1억 위안(약 195억 원)을 추가 투입해 로봇 2000대를 추가로 사겠다고 공시했다. 프랜차이즈 체인 라오샹지(老鄕鷄)도 451개 매장에 스마트 조리 로봇을 설치했다. 훙찬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세계 AI 조리로봇 산업연구보고서 2026'에 따르면 2025년 중국 조리로봇 시장 규모는 37억 위안(약 7200억 원)을 돌파했다. 2030년에는 117억 위안(약 2조2800억 원)으로 세 배 이상 커질 전망이다.
마파두부는 어떻게 디지털화 됐나
조리 로봇이 하는 일은 우선 인간 주방장을 '학습'하는 것이다. 손맛을 데이터로 옮기는 작업이다. 마파두부 하나를 생각해보자. 불의 세기는 냄비 온도·전력·시간으로 수치화한다. 뒤집기 동작은 기계 궤도의 속도·각도·빈도로 제어한다. 식재료를 넣는 타이밍은 밀리 초 단위의 정밀도가 요구된다. 이 모든 과정이 로봇에 내장된 대형 언어 모델 안에 축적된다.
중국 최대 조리로봇 전문업체 샹루로봇(橡鹿機器人)의 슬로건이 흥미롭다. "1만 대의 기계가 같은 요리를 볶을 때 맛이 동일할 것. 한 대의 기계가 같은 요리를 1만 번 볶아도 맛이 흔들리지 않을 것." 숙련된 주방장도 컨디션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기계는 그 변수가 없다. 균일함이 무기다.
조리로봇으로 조리된 중국식 쓰촨요리 라조기, 구내식당의 인기메뉴다. 바이두
문제는 솥맛, 3년 만에 비밀을 풀었다
학습은 어렵지 않다. 진짜 문제는 솥이다.
중국 요리에서 '솥 맛'은 거의 종교에 가까운 개념이다. 중국어로 훠치(鑊氣), 광둥어로 웍헤이(Wok Hei)라고 부르는 그것. 갓 볶은 요리에서 퍼지는 그 특유의 향과 열기, 살짝 그을린 듯한 감칠맛은 오랜 세월 숙련된 인간 주방장만이 구현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솥 맛의 본질은 마이야르(Maillard) 반응이다. 고온에서 아미노산과 당이 결합하면서 갈변과 함께 복합적인 향 물질이 생성되는 화학 반응이다. 이 반응의 강도를 결정하는 변수는 화력, 가열 면적, 가열 빈도, 그리고 냄비 소재다.
샹루로봇 연구진이 3년의 개발 끝에 찾아낸 답은 '질화철 냄비(氮化鐵鍋)'다. 일반 철보다 경도가 높고 내마모성이 뛰어나면서 마이야르 반응을 더 강하게 유도하는 표면 특성을 갖췄다. 좋은 요리사에게 좋은 칼이 필요하듯, 좋은 로봇에게도 좋은 솥이 필요했다. 이 냄비 한장이조리로봇솥 맛의 핵심 비밀이다.
구내식당의 주요 일꾼이 된 조리로봇. 바이두캡쳐
로봇 때문에 주방에서 사라지는 것들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다. 2000명 규모 기업 구내식당에 조리 로봇 10대가 들어가자 60명이 넘던 주방 직원이 20명으로 줄었다. 로봇 관리직원 한 명과 기계 2대면 주방장 3명을 대체한다. 맛 재현율은 90% 이상, 인력 효율 80% 향상, 에너지 소비 50% 절감. 기계 단가는 고작 3만~10만 위안(약 585만~1950만 원), 인간 주방장의 한 달 월급이다.
라오샹지는 주방 직무를 '재료 세팅조'와 '기계관리팀'으로 명확히 분리했다. 칼질·조리·간 맞추기를 사람이 전부 하던 시대에서 사람이 기계를 감독하는 시대로 바꿨다. 중국 요리학교 학생들은 이 변화를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기름 연기 마시며 직업병 얻느니 기계 관리가 낫다는 것이다.
물론 주방장이 필요 없는 건 아니다. 로봇에게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고급 해산물, 두께가 제각각인 생고기, 먼저 데치고 따로 볶다가 다시 합치는 광둥식 이단(二段) 조리법은 아직 사람의 몫이다. 지금 조리 로봇이 보편화한 분야는 토마토 달걀 볶음, 마파두부, 고추 잡채처럼 프로세스가 일정한 대중 요리 분야다. 결정적으로 기계는 새 메뉴를 개발하지 못한다. 맛의 혁신과 식재료 조합의 새로운 발상 역시 인간의 몫이다.
그러나 조리로봇과 인간의 밥그릇 전쟁은 이미 서막을 올렸다. 균일함과 효율을 원하는 체인 식당의 주방은 더욱 조리로봇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키오스크, 스마트 오더가 이미 보편화한 한국 식당가에도 로봇이 슬슬 문턱을 넘어 주방을 차지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