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이 스타디움·공연장 등으로 각광 정작 거주민은 주차난·소음으로 고통 지역 경제 살았지만 주거비 올라 곤혹
소파이 구장 앞에 조성된 주택단지. 구장이 붐비면서 인근 주택가격도 올라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게리 코로나도 기자
남가주 잉글우드(Inglewood)가 서부를 대표하는 스포츠·엔터테인먼트 도시로 빠르게 변신하고 있다. 소파이 스타디움(SoFi Stadium), 인튜이트 돔(Intuit Dome), 할리우드파크(Hollywood Park)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개발이 이어지면서 세계적인 스포츠와 공연의 중심지로 떠올랐지만, 주민들은 그 화려한 변화 뒤에 숨은 교통 혼잡과 소음, 치솟는 집값이라는 새로운 현실도 함께 감당하고 있다.
50여 년 전 모닝사이드파크에 집을 마련한 신디 지아르디나는 도시의 흥망성쇠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인물이다. 그는 과거 잉글우드 시의원과 공원·레크리에이션 위원으로 활동하며 도시 발전 과정에도 직접 참여했다.
그는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도 잉글우드는 성장 가능성이 큰 도시였다”며 “하지만 지금처럼 세계가 주목하는 스포츠와 문화 중심지로 발전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아르디나가 처음 정착했던 1970년대 잉글우드는 이미 남가주의 대표적인 문화도시였다. 할리우드파크 경마장은 수많은 관람객을 불러 모았고, 더 포럼(The Forum)은 유명 가수들의 공연과 NBA LA 레이커스의 홈경기가 열리던 상징적인 장소였다.
그러나 이후 수십 년 동안 도시는 상대적으로 정체기를 겪었다. 일부 기업과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활력이 떨어졌고, 주변 도시들에 비해 개발 속도도 더뎠다.
소파이 구장 입구 전경. 알렌 샤벤 기자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지난 10여 년이다.
과거 경마장이 있던 부지는 300에이커 규모의 초대형 복합개발 프로젝트인 할리우드파크로 재탄생했다. 이곳에는 NFL 로스앤젤레스 램스와 차저스의 홈구장인 소파이 스타디움이 들어섰고, 쇼핑시설과 레스토랑, 사무공간, 공원, 주거시설이 함께 조성됐다.
여기에 지난해 NBA LA 클리퍼스의 새로운 홈구장인 인튜이트 돔까지 개장하면서 잉글우드는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스포츠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메트로 철도 확장과 함께 호텔, 오피스, 신규 아파트 개발도 계속 추진되고 있어 도시의 변화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주말마다 수만 명 몰리는 도시
이제 잉글우드의 주말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
최근 할리우드 파크에서 열린 대형 음악축제 ‘하드 서머’에는 수만 명이 몰렸다. 같은 기간 기아 포럼(Kia Forum)에서는 인기 가수들의 공연이 이어졌고, 소파이 스타디움 역시 FIFA 월드컵 경기와 대형 콘서트를 준비하며 사실상 매주 대형 이벤트를 개최하고 있다.
한 지역에서 동시에 여러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도시 전체가 거대한 행사장으로 변한다.
도로 곳곳이 통제되고 차량은 스타디움 주변에서 1마일 이상 길게 늘어선다. 센추리 불러바드와 프레리 애비뉴는 극심한 교통 정체를 겪고, 인근 도시까지 영향을 받을 정도다.
5년째 잉글우드에 거주하는 찬드라 리처드슨은 이제 외출하기 전 반드시 행사 일정을 확인하는 것이 생활습관이 됐다.
그는 “센추리 블러버드 쪽에 볼일이 있으면 행사 여부부터 확인한다”며 “한 번은 타깃(Target)에 갔다가 경기 일정이 있는 줄 모르고 몇 시간 동안 교통체증에 갇힌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행사가 열릴 때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주차다.
행사장 주변 민간 주차장은 차량 한 대당 100달러가 넘는 요금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소파이 스타디움 인근 주택가는 주민 보호를 위한 2시간 주차 제한과 견인구역(Tow Away Zone)이 대폭 확대됐다.
방문객들의 무단 주차는 줄었지만 주민들도 손님을 초대하거나 차량을 이동할 때 불편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소음도 주요 민원이다.
모닝사이드파크에 사는 크리스틴 카터는 “야외 콘서트가 열리는 날이면 집 안에서도 음악 소리가 또렷하게 들릴 정도”라며 “평일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공연은 아이들과 가족들의 잠을 방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잉글우드시는 주민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공연 종료 시간을 제한하는 야간 통행금지 규정을 도입했다.
일부 주민들은 삼중창을 설치하거나 행사 시간에 맞춰 외출 일정을 조정하는 등 나름의 적응 방법을 찾고 있다.
흥미롭게도 소음이 오히려 즐겁다는 주민도 있다. 리처드슨은 “집에서 TV로 경기를 보다가 스타디움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을 함께 들으면 마치 현장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행사가 없는 평일이면 새롭게 조성된 할리우드파크는 지역 주민들의 생활공간으로 변한다.
피트니스센터에는 운동하는 주민들이 모이고, 레스토랑과 카페에는 가족 단위 손님들이 찾는다. 공원과 산책로에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주민들은 산책을 즐긴다. 26년째 잉글우드에서 살아온 피트니스 강사 클로딘 쿠퍼는 “예전보다 생활이 훨씬 편리해졌다”며 “집 가까이에서 운동하고 식사하고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평가했다.
신디 지아르디나 역시 도시의 성장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서로 다른 문화를 공유하는 도시가 되고 있다”며 “이 변화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발이 모두에게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세입자 단체인 레녹스-잉글우드 세입자연합은 소파이 스타디움 건설 초기부터 대규모 개발이 임대료 상승과 원주민 축출을 불러올 것이라고 반대해 왔다. 실제 부동산 가격은 크게 올랐다.
잉글우드는 2016년까지만 해도 LA카운티에서 비교적 집값이 저렴한 지역 가운데 하나였지만,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2021년 중간 주택가격이 불과 5년 만에 84%나 상승했다.
기존 주택 소유자들에게는 자산 가치가 크게 오른 셈이지만, 세입자와 첫 주택 구입자들에게는 그만큼 진입 장벽이 높아졌다.
잉글우드는 앞으로도 월드컵과 올림픽 등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하는 핵심 도시로 성장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도시 발전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경제적 성장뿐 아니라 교통 개선과 주택 공급 확대, 기존 주민들의 주거 안정 대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때 경마장과 공연장으로 기억되던 잉글우드는 이제 세계가 찾는 스포츠와 문화도시가 됐다. 그러나 도시의 화려한 변신이 모든 주민에게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성장의 혜택을 넓게 나누면서도 기존 주민들의 삶의 질을 지키는 일이 잉글우드의 다음 과제가 되고 있다.
━
원문은 8월 3일자 ‘The Inglewood revolution: What it’s like living in the shadow of SoFi Stadium‘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