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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눈치에 대북정책 흔들리는 李…조현·정동영도 잇단 충돌

중앙일보

2026.08.06 02:15 2026.08.0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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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외교부 장관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2026년 을지연습 준비보고회의에 참석해 있다. 뉴스1

조현 외교부 장관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2026년 을지연습 준비보고회의에 참석해 있다. 뉴스1

이재명 대통령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대북 구상에 공개 제동을 건 파장이 이틀째 이어졌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가세하고 정 장관이 하루 뒤 맞받으면서, 대북정책을 둘러싼 동맹파와 자주파 간 노선 차가 또 다시 드러났단 말이 나온다.

발단은 지난 5일 외교·안보 부처 업무보고였다. 이 대통령은 취임 첫 광복절 경축사에서 약속했던 9·19 남북군사합의 복원 문제를 직접 꺼내 “취임하면서 순차적·선제적으로 복원하겠다고 국민들께 말씀드렸는데 상황이 개선되지 않다 보니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것이냐’, ‘안보를 포기하는 것이냐’는 반격이 생겨났고 진척도 잘 안 됐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우리의 선의대로 하는 게 과연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결론적으로 플러스가 되느냐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며 “(통일부는)고민을 많이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실상 속도조절을 시사한 것이다. 또 정 장관이 남·북·미·중 4자 대화 구상 등을 보고하자 “여기서 발표했다고 내가 승인한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고, 북한을 ‘조선’으로 부르자는 방안엔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잘라 말했다.

정 장관의 구상은 보고 당일 무색해졌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업무보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4자 대화를 콕 집어 “이상주의적 바람”이라고 평가한 뒤 “디스카운트(낮은 의미 부여)를 좀 해달라”고 하면서다. 다른 부처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구상을 당일 공개 겨냥한 건 이례적인 장면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9일 정부서울청사 구내식당에서 조현 외교부 장관,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9일 정부서울청사 구내식당에서 조현 외교부 장관,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그러자 정 장관은 다음날인 6일 출근길에 관련 질문을 받자 “이상이 있어야 현실을 바꾸죠”라고 반박하면서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어 이날 통일부는 ‘업무보고 관련 입장문’을 내고 조 장관 발언을 재차 되받았다. “통일부의 자세와 접근은 이상주의가 아니라 지금 시점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것”이라면서다. 또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움직이고 또 움직여야 한다”고도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두 부처가 거듭 이견을 노출한단 지적을 받자 “이견 노출을 우리가 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파장이 커지자 외교부 당국자도 기자들과 만나 “엇박자가 난다는 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진화에 나섰다. 다만 이견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이 당국자는 “이견이 전혀 없느냐, 그건 전혀 아니다”며 “(통일부 보고 가운데) 4자 회담과 동방경제포럼 등 몇몇 내용이 부처 간 조율을 거치지 않은 단계”라고 했다. 특히 외교부 내에선 북·미 양자대화가 진입조차 못한 상황에서 3자·4자·6자 틀을 꺼내는 건 비현실적이란 시선이 강하다고 한다.

조현 외교부 장관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4월 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제4차 비상경제 점검회의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조현 외교부 장관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4월 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제4차 비상경제 점검회의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이 대통령의 제동과 두 부처의 신경전이 겹치면서, 한반도 평화공존정책의 방법과 속도에 대한 정부 내 간극이 압축적으로 공개됐단 말이 나온다. 다만 이 대통령의 무게추는 동맹파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관련 사정에 정통한 여권 관계자는 이를 “대북 정책 보폭에서 정 장관은 3보, 이 대통령은 1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0.4보”란 말로 표현했다. 자주파인 정 장관이 선제적 조치로 돌파구를 만들려 한다면, 위 실장을 중심으로 한 동맹파 라인은 북한의 호응과 한·미 공조를 먼저 따지는 쪽이다.

실제 외교·통일 부처 간 의견이 엇갈릴 때 이 대통령은 대체로 한·미 동맹과 국제공조를 중시하는 쪽에 손을 들어왔다. 지난 3월 정 장관이 UN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참여에 반대했지만 정부는 결국 참여를 결정했다. 자주파의 숙원이던 9·19 복원을 이 대통령이 직접 재검토 대상에 올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월 26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월 26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런 무게추의 이동은 한·미 관계를 의식한 판단과 무관치 않단 해석이 나온다. 9·19 합의의 핵심인 전방 비행금지구역 복원에 미국이 연합 감시·정찰태세 약화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 데다, 정 장관이 북한 핵시설 소재지로 평안북도 구성시를 공개 언급한 뒤 미국이 일부 민감정보 공유를 제한한 것도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 간 불신을 더 키워서는 안 된단 판단이 작용했단 것이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을 앞세워 대남 단절을 노골화하고 중·러와 밀착하는 상황도 자주파의 정책 드라이브엔 걸림돌이다.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핵추진 잠수함, 핵연료 농축·재처리 문제에서 미국의 협력을 끌어내야 하는 현실 역시 동맹파의 목소리에 힘을 싣는 배경이다.

이에 따라 외교가 안팎에선 오는 15일 경축사엔 지난해의 ‘9.19 합의 선제적 복원’보다 한발 물러난 대북 메시지가 담길 수 있단 관측이 나온다. 자주파 일각에선 경축사에 북한을 ‘조선’으로 호칭하자는 주장도 나왔지만, 이 대통령이 공개 일축하며 반영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단 평가다.

지난해 12월 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반도평화포럼 주최 '정부 출범 6개월, 남북관계 원로 특별좌담'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 정 장관.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반도평화포럼 주최 '정부 출범 6개월, 남북관계 원로 특별좌담'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 정 장관. 연합뉴스

최근 자주파 원로들의 강경한 목소리가 잦아든 점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단 말이 나온다. 외교부와 통일부가 대북정책 주도권을 놓고 충돌했던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원로들 사이에선 위성락 실장을 겨냥해 “미국 비위만 맞추면 (피스 메이커는 커녕) 페이스메이커도 못한다”(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 등의 날 선 지적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거듭 동맹파 쪽으로 기우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들도 발언을 아끼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실제로 한 자주파 원로는 최근 주변에 “이 대통령 생각이 위 실장과 다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더는 훈수를 얹지 않으려 한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윤지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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