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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인의 읽는 클래식 듣는 문학] 춤추는 신을 고대한 니체와 슈트라우스

중앙일보

2026.08.06 08:02 2026.08.06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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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니체(사진)는 시인 구도자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새로운 시대를 선포한다. 신은 죽었다. 인간은 건너가는 존재다. 신과 영웅과 높은 인간들, 곧 고정된 절대적 권위의 시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인간, 곧 초인의 시대가 도래한다. 이 초인은 무엇보다 춤추기를 배운다. 만일 신이 춤출 줄 알았더라면 기꺼이 그를 믿어도 좋으리라. 이때의 춤은 자유의 상징이다. 매여 있지 않음의 상징이요, 머물러 있지 않음의 상징이며, 유희와 웃음으로 중력의 영을 죽일 줄 아는 자의 몸짓이다.

한 곳에 머물러 안주하지 않는 것, 빠른 움직임과 느린 움직임, 이동과 멈춤을 자유자재로 다루되 몸짓으로서 정신을 해방시키는 것이 춤이다. 그래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니체 저작을 주제 삼아 동명의 교향시를 작곡했을 때 춤은 인간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음악적 표현이 되었다. 장엄한 자연의 일출 장면이 전곡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이라면, 고정된 템포에 붙잡히지 않으려는 ‘춤노래’는 유희하는 인간의 몸과 생명력을 말해준다.

슈트라우스는 니체의 인도를 받아 자신의 위 단계로 나아가고자 했다. 고향 뮌헨의 음악적 보수성을 넘어서려 했고, 리스트라는 선구자를, 바그너라는 거인을 계승하면서도 넘어서고자 했다. 리스트의 기교성이나 민족주의를 넘어 유럽 보편의 정신을 추구하고자 했고, 바그너의 신화·구원·희생·영웅성 등의 주제를 넘어서서 현대적 개인의 회의와 감각적 유희,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긴장과 공존을 그려내려 했다.

니체는 악마가 엄숙하다고, 의무의 무게로 짓누른다고 썼다. ‘해야 한다’라는 당위가 지배하는 사회, 전통과 관습이 억누르는 사회를 넘어서서 ‘원한다’라고 말하는 개인. 시도하고 유희하고 넘어서는 개인을 상상하고자 했다. 그것이 젊은 슈트라우스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다. 우리 또한 니체의 몸짓을 따라 춤을 배우자. 자신을 넘어서자.

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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