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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의 뉴스터치] 블랙 위도

중앙일보

2026.08.06 08:06 2026.08.0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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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 선임기자

장혜수 선임기자

검은과부거미(Black widow spider)를 처음 학계에 보고한 건 18세기 덴마크 곤충학자 요한 크리스티안 파브리치우스다. 북미에서 가져와 연구한 거미가 생명을 뺏을 만큼 맹독성인 점에 착안해 암살자 거미라고 명명했다. 서식지인 미국 남부에서는 몸통의 붉은 모래시계 무늬에 주목해 단추 거미, 모래시계 거미로 불렀다. 이 거미는 교미를 마친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고 자신을 과부로 만드는 습성이 있었다. 당시 북미의 유럽 이민자 사회에서 남편을 잃은 아내는 검은색 상복과 베일을 착용했다. 이런 요소들이 결합해 검은과부거미라는 이름이 붙었고 공식 명칭으로 굳어졌다.

20세기 초 언론은 검은과부거미의 습성을 범죄 설명에 가져다 썼다. 독극물 등으로 남편을 살해하고 보험금·유산을 챙긴 여성 연쇄살인범을 블랙 위도(검은 과부)라 불렀다. 검은 과부 범죄는 잔혹성 외에 피해자와의 친밀성, 장기간에 걸친 치밀성, 금전적 이득 목적 등을 수반한다. 대중문화계가 이런 매력적인 소재를 놔둘 리 없다. 1964년 마블 코믹스는 ‘테일즈 오브 서스펜스’에 블랙 위도(나타샤 로마노프)라는 소련 스파이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지력과 매력으로 목표 남성을 유혹한 뒤 무력화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는 가운데 사기성 위장 결혼 범죄가 빈발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러시아 정부는 전사자 유족에 최소 500만 루블(약 880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는데 이를 노린 범죄다. 사기범은 전선 투입을 앞둔 신병이나 무연고 군인, 위중한 부상병 등에 접근해 혼인신고부터 마친다. 법적 최우선 유족 지위를 얻은 사기범은 남편이 사망하면 보상금을 챙긴다. 심지어 군 병원 간호사가 부상병 다수와 혼인신고한 뒤 보상금을 챙긴 경우도 있다. 살인을 수반하지 않아도 모두 검은 과부 범죄다.

훗날 곤충학자들은 야생의 검은과부거미는 수컷을 잡아먹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수컷은 먹히기 전에 대개 도망친다. 실험실의 좁은 사육장에서 비정상적으로 일어난 과다 사례 탓에 거미는 악명을 얻은 셈이다. 끝이 안 보이는 전쟁 역시 인간을 좁은 사육장 속 거미처럼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장혜수([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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