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대북 구상에 공개 제동을 건 파장이 이틀째 이어졌다. 여기에 조현 외교부 장관이 가세하고 정 장관이 하루 뒤 맞받으면서, 대북정책을 둘러싼 동맹파와 자주파 간 노선 차가 또 다시 드러났단 말이 나온다.
발단은 5일 외교·안보 부처 업무보고였다. 이 대통령은 취임 첫 광복절 경축사에서 약속했던 9·19 남북군사합의 복원 문제를 직접 꺼내 “우리 선의대로 하는 게 과연 한반도 평화에 결론적으로 플러스가 되느냐는 의문”이라며 속도조절을 주문했다.
정 장관이 남·북·미·중 4자 대화 구상 등을 보고하자 “내가 승인한 건 아니다”고 답했고, 북한을 ‘조선’으로 부르자는 방안엔 “논쟁 여지가 있다”고 잘라 말했다.
정 장관의 구상은 보고 당일 무색해졌다. 조 장관이 직후 기자들과 만나 4자 대화를 “이상주의적 바람”이라고 평가한 뒤 “디스카운트(낮은 의미 부여) 해달라”고 하면서다. 다른 부처 보고를 당일 공개 겨냥한 건 이례적이다.
그러자 정 장관은 6일 출근길에 “이상이 있어야 현실을 바꾸죠”라고 맞받았다. 이어 통일부는 입장문을 내고 “통일부의 접근은 이상주의가 아니라 지금 시점에서 가장 현실적”이라고 했다.
파장이 커지자 외교부 당국자도 기자들과 만나 “엇박자가 났단 건 사실이 아나다”며 진화에 나섰다.
다만 “특정 사안에 대해 의견이 다른 건 분명 있다”고 덧붙였다. 외교부 내에선 북·미 대화 진입조차 못한 상황에서 4자 틀을 꺼내는 게 비현실적이란 기류가 짙다.
이 사이에서 이 대통령의 무게추는 동맹파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여권 관계자는 이를 “대북정책 보폭에서 정 장관은 3보, 이 대통령은 1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0.4보”라고 표현했다. 실제 두 부처 의견이 엇갈릴 때 이 대통령은 대개 한·미 동맹 쪽에 손을 들어왔다. 지난 3월 정 장관이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참여에 반대했지만 정부는 결국 참여를 결정했다.
자주파의 숙원이던 9·19 합의 복원을 이 대통령이 직접 재검토 대상에 올린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는 한·미 관계를 고려한 판단으로 보인다. 9·19 합의의 핵심인 전방 비행금지구역 복원에 대해 미국이 연합 감시태세 약화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주파 원로들의 목소리도 잦아드는 분위기다. 한 원로는 최근 주변에 “이 대통령 생각이 위 실장과 다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더는 훈수를 얹지 않으려 한다”고 토로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