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국제학술지에 실린, 출산문제를 다룬 논문의 제목이 범상치가 않다. “결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언제나 최선이다.” 인류에게 탄생과 존재 자체가 불행이라는 인식은 뿌리가 깊다. 문제는 그런 인식이 지금 인류에게 다시 등장했다는 점이다. 물론 현재의 한국은 그 대표 국가다. 한국 청년들은 여러 언어로 이를 표현한 바 있다.
소포클레스에 따르면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 좋은 일이지만, 일단 태어났으면 / 되도록 빨리 왔던 곳으로 가는 것이 / 그 다음으로 가장 좋은 일”이다. 다른 작품에서 그의 토설은 훨씬 직접적이다.
생명·출산·자살은 인구체제문제
개인선택 넘어 사회·세대의 산물
정치·경제·사회적 청년배제가 핵심
세대학살 대신 세대살리기가 해법
성서에서 욥은 자기가 태어난 날을 ‘사라지라’고 거듭 저주하면서, 자신의 탄생을 가장 절망한다. “어찌하여 나는 죽어서 나오지 않았으며 / 첫 숨이 마지막 숨이 되지 않았던가?”
괴테는 이른바 파우스트적 계기, 즉 악마와의 계약 이후에조차 파우스트의 입을 통해 “오, 나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더라면!”라고 말하게 하여, 수동적인 탄생으로 인한 필연적인 고뇌·방황과 능동적인 필사적 탈출 노력 사이에 놓인 모순과 가능성을 가장 밑바닥부터 제기한다. 괴테 자신에 따르면 이 문제는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였다. 인류의 위대한 고전에서 이런 언명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국의 인구소멸·지역소멸·학교소멸·도시소멸·공동체소멸의 가공할 위기 문제는, ‘장기지속’과 ‘해법 부재’라는 특징을 함께 갖는다. 즉 명백히 체제문제이자 세대문제인 것이다.
최악의 출산문제는 벌써 한 세대를 지속한다. OECD 최하 1위에 머문 기간도 20년에 달한다. 최근 극미한 개선 조짐이 보이고는 있으나 여전히 최악 수준이다. 1위 지속 기간 한 세대를 앞둔 최악 수준의 자살도 같다. 10대에서 30대까지 사망원인 1위는 압도적으로 자살이다. 특히 역대 최악을 기록한 아동과 청소년 자살은 우리를 경악하게 한다.(국가데이터처, ‘아동·청소년 삶의 질 2025’) 필자는 자주 상세 수치를 제시한 바 있지만 이제 그 끔찍한 숫자는 보는 것도 두렵다.
탄생과 존재의 고통을 물려주지 않고 자기세대에서 끊거나(최고·최악의 출산 거부), 아니면 자기를 가능한 빨리 낳은 곳으로 되돌리는 것이다(최고·최악의 자살). 이 세대와 이 세대가 만든 체제의 삶을 본받거나 물려주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의 역설적 잠언을 빌리자면 그들은 최선과 차선을 선택하고 있다고 말해야 하나?
여기서 체제문제·세대문제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을 갖는다. 하나는 민주화 이후 한 세대를 지속하고 있는 사회구조와 정책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적 삶의 본질에 대한 다음 세대의 집단저항이라는 점이다. ‘사회를 바꾸자’고,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고 투표를 해도 바뀌지 않는데 대한 세대저항인 것이다.
공동체 전체의 출산문제는 개인적 출산의지를 넘어 인구체제, 즉 사회체제 및 그 속에서의 인간적 가치실현의 문제로 보지 않는 한 풀리지 않는다. 인구체제는 사회체제의 한 부분체제이기 때문이다. 자살문제 역시 개인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공동체 성원들의 개별적 내몰림의 귀결로 보지 않는 한 바람직한 해법은 없다. 외환위기, 카드대란, 글로벌 금융위기를 제외하면 한국 자살율은 OECD 최악은커녕 평균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 놀랍게도 1988년 한국의 자살률은 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했다.
출산·자살·세대·젠더를 포함한 인구체제는 개인문제가 아니다. 한 세대의 기회비용, 즉 주택구입, 자녀양육과 교육, 취업과 승진, 부동산과 소득 불평등,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정치적 대표체계 등을 보면 이중 어떤 부분체제도 청년문제 및 인구체제와 긍정적 관계가 없다. 예컨대 청년 비정규직은, 청년 인구가 계속 줄어드는데도 외려 더 늘어나고 있다. 무려 30%를 넘는다.
청년문제가 나라문제의 중심임에도 불구하고 청년의원 숫자와 비율은 최악이다. 30세 이하 청년 의원은 0%로 OECD 최하위다. 40세 이하 청년 의원은 5.7%로 역시 최하위다. 대체 청년들은 어디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대표하고 입법하나? 이 나라에는 청년은 있으되 청년대표는 없다.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배제와 차별에 이어 이제 기성세대는 청년세대에게 이념감별사, 정치성향 감별사를 자처하고 있다. 자신들이 좌경용공으로 감별당할 때 그토록 저항하던 민주화 세대는 청년세대에 대해 오만한 낙인찍기 감별을 자행한다. 무도한 이념적 언어적 폭력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회배열은 ‘세대’와 ‘살해’의 결합, 즉 세대학살(genecide)로 불려야할지 모른다. 기성세대는 청년세대에게 미필적인 구조적 세대학살을 자행하고 있다. 기성세대에게 호소한다. 체계적인 세대학살을 멈춰라! 지금 당장 멈추고 함께 가지 않으면, 이 땅은 사람도 나라도 다 끊기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