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원은 한국 정부가 지원한 원자력 유학생 1기다. 서울대 화학과에서 인정받던 수재였지만, 겁 없이 떠난 미국 유학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좌절감이 컸다. 그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고민과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청년 송창원은 정면 돌파를 택했다. 유학을 지원해준 한국 정부에 편지를 썼다. ‘추가적인 지원은 필요 없으니 비자만 연장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1년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가기엔 연구가 될 것 같지도 않고, 여기서 그만둘 순 없었다”고 회상했다.
연구자로서 그는 지난 60년간 치열한 삶을 살았다. 아침 8시면 어김없이 연구실에 출근했다. 퇴근은 저녁 7시면 빠른 편이고, 실험이 있을 때는 자정까지도 연구실을 지키며 경과를 살폈다. 그야말로 워커홀릭이었다.
결국 송창원은 세계에서 인정받는 과학자가 됐다. 방사선 종양학 및 온열치료 분야에서 선구자로 손꼽힌다. 미국국립보건원 최고의 영예 상(Merit Award)과 북미 온열학회 로빈슨상, 국제온열학회 스기하라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