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결혼을 앞두고 남편의 빈자리가 다시금 떠오른다. 청첩장을 건네며 지긋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아들의 모습에서 남편의 젊은 날이 스쳤다. 이제 한 여자의 남편이 되어 삶을 함께 떠받쳐야 할 아이. 돌아서 걷는 어깨 위로 가장의 무게가 내려앉고 있었다.
나는 남편과의 행복했던 추억보다, 내 삶을 지탱해 주었던 그의 품성을 먼저 떠올리고 있었다. 살아 있었다면 아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었을까. 질문 앞에서, 평생 아내의 자리를 믿음으로 지켜주던 남편이 떠올랐다. 그 기억은 결혼식 전날 모자 둘이 마주 앉은 자리에서 오래 묻어 두었던 이야기로 이어졌다.
“결혼을 앞둔 네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단다. ‘엄마의 어느 하루’ 속에서 아빠를 만나보게 될 거야.”
아들이 초등학생이던 시절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사십여 년 전, 나는 서른을 갓 넘긴 젊은 엄마였다. 다시 공부를 시작한 남편과 어린 두 아이, 그리고 낯선 타국 생활은 쉼 없이 나를 다음 일정으로 떠밀었다. 삶은 빠듯했고, 우리는 가진 것보다 견뎌야 할 것이 더 많은 시절을 지나고 있었다.
그날도 일터에서 LA 타임스를 펼쳐 들다가 한 전면 광고에 눈길이 붙들렸다. 브로드웨이 백화점에서 그날 하루 ‘백 투 스쿨 세일’을 연다는 내용이었다. ‘Up to 70% Sale’. 아이들 개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세일 품목을 찾아다니며 형편껏 준비해 주던 터라, 이 기회에 아이들에게 조금 더 좋은 것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마음이 앞서 하던 일을 서둘러 마치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매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백팩과 필통, 아이들이 좋아할 학용품들을 카트에 담았다. 긴 계산줄 끝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던 중, 바로 옆 진열대에 물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줄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 손으로 카트를 잡은 채, 걸음을 한 발짝 내디뎌 그것을 집어 들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Next!”
계산원이 내 뒤를 향해 손짓하며 불렀다. 순간 어리둥절했다. 분명 내가 맨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다음인데요.”
그러나 그녀는 내 말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다시 뒤쪽 손님을 불렀다. 내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결국 그 손님을 계산대로 맞아들였다.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거의 유일한 동양인이었고, 허름한 일복 차림에 발에는 슬리퍼까지 신고 있었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아, 이런 것이 차별이구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억울함과 수치심이 한꺼번에 밀려왔지만, 그 감정을 제대로 꺼내 놓을 영어 문장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계산대 앞으로 다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이름이 뭐죠?” 겨우 그 말부터 꺼냈다. “다시 와서 이 문제를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겁니다.” 잊지 말라는 듯 또박또박 말하고 돌아섰지만, 후들거리는 다리로 정신없이 백화점을 나서자 벤치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모욕을 견딜 언어도, 기댈 곳도 없는 막막함에 휩싸여 있었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일터로 돌아오자마자 오랫동안 가게 일을 도와오던 매니저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숨차게 털어놓았다. 함께 분노해 주기 바랐다. 적어도 내 감정에 공감해 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의외로 덤덤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대수롭지 않게 한마디를 흘리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
서운함은 더 큰 외로움이 되어 가슴에 차올랐다. 같은 말을 쓰는 동료에게서조차 닿지 않는 공감 앞에서, 마음 둘 자리마저 사라진 듯했다. 실망은 곧 슬픔으로 바뀌었고 눈물이 고였다. 그때 가게 문이 열리며 남편이 들어섰다. 수업이 일찍 끝나 가게를 둘러볼 겸 들른 길이었다. 나는 백화점에서의 사건을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반가움과는 별개로 또 한 번의 실망을 겪게 될까 두려웠다. 그런데 남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영아, 무슨 일 있었지? 자, 다 이야기해 봐. 네 얘기 들으려고 내가 빨리 오게 된 것 같네.”
그 말에 마음의 경계가 무너졌다. ‘들어주겠다’는 한마디가 내 속에 웅크리고 있던 외로움을 스르르 풀어냈다. 나는 백화점에서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말하는 동안 신기하게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잠잠한 눈길로 끝까지 귀담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위로였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 그는 내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많이 힘들었겠네. 자, 우리 다시 백화점으로 가자.”
잘했느니 못했느니 어떤 판단도 보태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내 편이 되어 앞장서는 그의 어깨가 그날따라 유난히 든든해 보였다. 어린 시절 엄마 뒤에 서 있으면 세상이 덜 무서웠던 아이처럼, 어느새 나는 힘찬 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백화점에 도착했을 때 문제의 계산원은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다. 남편은 침착한 목소리로 매니저를 불러 달라고 했다. 잠시 후 우리는 총 매니저실로 안내되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러 온 것이 아닙니다. 아내가 오해했을 수도 있고, 직원이 실수했을 수도 있겠지요. 저도 장사를 하는 사람으로서, 장사의 기본은 손님을 존중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단 한마디를 듣고 싶습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잠시 후 담당 직원이 불려와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들끓던 감정이 제자리를 찾아 편안해졌다. 매니저는 내가 골랐던 학용품들을 가리키며 모두 선물로 주겠다고 말했다. 속으로 환호의 마음이 일었다. 이것이야말로 백화점다운 보상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남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 한마디는 그날의 일을 가장 품위 있게 마무리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우리는 선물로 주려던 물건들을 그대로 둔 채 빈손으로 백화점을 나섰다. 손에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지만, 발걸음에는 모든 것을 얻은 듯한 당당함이 실려 있었다. 그날 나는 배웠다. 존엄은 그저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켜낼 때 비로소 주어진다는 것을.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있던 아들이 눈시울이 젖은 얼굴로 말했다.
“아, 아빠가 그런 사람이었구나. 우리 아빠, 정말 멋진 사람이네.”
그 자리에서 이번에는 엄마로서 해주고 싶은 말을 아들에게 글로 전했다.
‘아들아, 언젠가 네가 물었지. 엄마같이 헌신하는 아내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하고. 기억하렴. 어떤 상황에서든 아빠처럼 아내를 전적으로 믿어 주는 남편이 되면 된단다. 잘잘못을 가리기 전에 먼저 아내의 편에 서 주고, 그 마음의 자리에 함께 있어 주는 것. 아내는 그런 남편 곁을 기꺼이 따르고 싶어지게 마련이란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부부 행복의 토대이고, 네 아내의 행복이 곧 너의 행복이 되어 줄 거야.’
결혼 후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다.
“어떤 문제 앞에 설 때마다 ‘아빠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 봐.”
그 말을 듣는 순간, 백화점에서 돌아오던 길 묵묵히 앞서 걷던 남편의 등이 떠올랐다. 내가 믿음으로 따라 걸었던 그 등이, 이제는 아들의 길잡이가 되어 주고 있었다. 아빠는 지금도 아들의 삶 속에서 ‘자랑스러운 본(本)’으로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