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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안전장치

Los Angeles

2026.08.06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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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영 / 수필가·소설가·디카시인

박하영 / 수필가·소설가·디카시인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어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 순간 오토바이 한 대가 내 차 앞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와 멈춰 섰다. 검은 헬멧에 목까지 여민 가죽 재킷.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도 빈틈없이 몸을 감싼 모습이 오히려 불안해 보였다.  
 
철없던 십 대 시절, 자동차 대신 오토바이를 사겠다고 했다가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된다”며 단칼에 말리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평소 같았으면 ‘멋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 텐데, 그날은 ‘헬멧만으로 안전할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안전벨트 하나에 의지한 채 달리고 있었다.
 
교회 문을 나선 지 채 십 분도 되지 않았는데 설교의 여운은 벌써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번 한 주 동안 누군가와 십 분 이상 진심으로 대화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목사님의 질문은 단순했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안부를 묻고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일은 많았다. 하지만 오해를 풀기 위해 마음을 열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상대의 마음을 끝까지 들어 준 기억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당장 화해해야 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혹시 나만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애써 삼킨 만큼 누군가도 나를 품어 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신호가 바뀌자 오토바이는 차들 사이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사이드미러를 스칠 듯 달리는 모습을 보니 괜히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수년 전 LA 한인타운에서 오토바이가 트럭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사고를 목격한 적이 있다. 다행히 운전자는 스스로 기어 나와 두 팔을 번쩍 들어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의 곁을 지나며 손을 흔들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생사의 기로를 건너온 그의 무사함은 내 마음에도 깊은 안도감을 안겨 주었다.
 
헬멧이 사고를 막지는 못해도 피해를 줄여줄 수는 있듯 사람 사이에도 그런 안전장치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몇 개의 신호등을 지나며 사람 사이를 지켜 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처음에는 신뢰가 떠올랐다. 그러나 신뢰는 시간이 쌓여 얻는 열매일 뿐, 관계를 지켜 주는 안전장치는 아니었다.
 
지난 시간, 관계를 지켜 준 것은 늘 사소한 것들이었다. 화가 치밀어도 삼킨 말 한마디, 섣부른 판단을 하루쯤 미룬 여유, 상대를 조금 더 기다려 준 마음. 그 짧은 망설임이 큰 충돌을 비켜 가게 했다.
 
사람에게도 자동차처럼 충돌시험은 있다. 다만 시험장이 아니라 시간이 대신할 뿐이다. 기쁠 때보다 힘들 때, 박수칠 때보다 침묵할 때 사람은 조금씩 본모습을 드러낸다. 같은 시간이 흘러도 어떤 관계는 깊어지고 어떤 관계는 깨진다. 오래 곁에 남은 사람은 처음부터 좋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숱한 충돌을 함께 비켜 오며 시간을 건너온 사람이었다.
 
시간은 그저 흘러간다. 그러나 그 시간 속에서 한 번 더 참고, 한 번 더 기다리고, 한 번 더 이해하려 했던 작은 망설임들이 관계를 지켜 왔다. 어쩌면 그것이 사람 사이에 가장 오래된 안전장치인지도 모른다.

박하영 / 수필가·소설가·디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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