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미국 뉴멕시코주에 속하는 리오 그란데 계곡은 24개 부족의 터전이었다. 원주민들은 한때 번성했지만 기후 변화로 쇠락한 채 스페인 정복자에 의한 약탈과 억압에 짓눌렸다. 1670년대는 특히 가혹했다. 지독한 가뭄과 기근, 호전적인 아파치족의 습격에 시달리는 와중에 스페인은 가톨릭을 강요하며 전통 신앙을 철저히 억압했다. 1675년, 무려 47명의 전통 치료사를 체포하고 감옥에 가둔 뒤 세 명을 처형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 전까지 원주민들은 오합지졸이었다. 스무 개가 넘는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고 사용하는 언어만 여섯 개였다. 자신들을 하나로 묶어 부르는 이름조차 없어서 스페인어로 ‘마을’을 뜻하는 ‘푸에블로(pueblo)’라 스스로를 부르고 있었다. 집단 수감 생활을 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부족의 지도자이기도 했던 전통 치료사 혹은 샤먼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며 단합하기 시작했다. 감옥이 ‘학교’가 되고 만 것이다.
스페인어로 산 후안, 토착어로 ‘포페’(Po’pay·사진)라 불리던 치료사는 그중 가장 카리스마 넘치고 영민했다. 다른 부족의 언어를 모두 구사했던 포페는 출소 후 정복자를 향한 대역습을 준비했다. 조상의 영혼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포페가 택한 거사일은 1680년 8월 10일. 기습을 당한 스페인은 수백 명의 목숨을 잃으며 거점인 산타페로 후퇴했지만 며칠 후 그마저도 내주고 말았다. 리오 그란데 협곡 일대가 원주민의 손으로 돌아간 것이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이 사건을 ‘푸에블로 반란’이라 부른다. 그 표현은 다소 불공정하다. 유럽인의 지배에 대항하여 자유와 종교적 관용을 쟁취한 최초의 무장봉기였을 뿐 아니라, 포페의 지도 하에 부족 연합은 공화국을 수립해 스페인과 맞섰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온 이민자가 아니라 본디 그 땅에서 살던 사람들이 북미 대륙 최초의 공화국을 세운 것이다. 비록 12년 후 스페인에게 재정복당하고 말았지만 식민 지배자들은 더 이상 원주민의 토착 신앙을 억압하지 못했다. 스스로 피 흘리며 싸우지 않는 자에게는 자유도 독립도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