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제적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열쇠 가운데 하나가 생산성이다. 동일한 시간에 이전보다 더 많은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물가를 크게 자극하지 않고도 임금인상이 가능하다. 기업은 직원의 추가 채용 없이도 성장할 수 있으며, 고령화 사회가 돼도 더 많은 은퇴자를 지원할 수 있다. 인력 부족 문제도 쉽게 해결이 가능하고, 정부 부채 역시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감당이 쉬워진다.
물론 생산성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요술 지팡이는 아니다.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그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갈지 자동적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또 경제적 번영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정하게 분배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생산성이 떨어지면 거의 모든 경제적 선택은 더 어려워진다. 나눌 수 있는 소득 자체가 줄어들면 각 계층과 집단은 작은 파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더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최근 거대언어모델(LLM) 인공지능(AI)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2022년 말 챗GPT 등장 이후 생성형 인공지능은 보고서를 작성하고, 방대한 자료를 요약하며, 컴퓨터 코드를 만들고, 여러 언어를 번역하고, 정보를 분석하며 질문에 답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여러 전문가가 함께 수행해야 했던 일을 이제는 한 사람이 훨씬 짧은 시간 안에 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이를 제4차 산업혁명의 시작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이처럼 놀라운 AI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 수치상 경제 전반의 생산성에는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직원 한 사람이 AI를 이용해 보고서 작성에 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기업 입장에서는 절약된 시간을 즉시 다른 생산 활동에 투입하기 어렵다. 이를 위해 경영진은 업무 방식을 새롭게 설계해야 하고, AI를 신뢰할 수 있는 회사 데이터와 연결해야 하며, 직원 교육도 해야 한다. 또한 AI가 실수했을 때 이를 발견하고 수정할 수 있는 관리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어떤 직원은 온종일 AI를 활용하지만, AI 사용에 어려움을 느끼는 직원도 있다. 많은 기업이 새로운 AI 업무 방식과 기존 방식을 동시에 운영하는 상황이다. 이런 전환기에는 오히려 업무가 더 늘어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실 이런 상황은 과거에도 있었다. 전기모터의 등장이다. 전기모터 등장 초기 공장주들은 거대한 증기기관을 전기모터로 바꾸는 데 그쳤다. 진정한 생산성 확대는 공장의 구조 자체를 새롭게 설계하고, 각각의 기계에 전기모터를 장착하면서 비로소 시작됐다.
컴퓨터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컴퓨터를 도입했지만, 사무 환경과 공급망, 고객 서비스 체계를 디지털 정보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하드웨어보다 조직 혁신이 더 중요했다.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생산성의 J곡선(Productivity J-Curve)’이라고 부른다. 기업들은 먼저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구축, 직원 교육, 조직 개편 등에 큰 비용 투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비용은 즉시 발생하지만, 생산성 향상 효과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나타날 뿐 아니라 정확한 측정도 어렵다. 그래서 생산성은 한동안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부터 빠르게 상승하는 경우가 많다.
LLM이 아직 경제 전반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못하는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현재의 AI는 주로 언어와 이미지, 컴퓨터 코드, 각종 정보를 처리하는 디지털 세계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현실 경제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물리적인 세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 농작물은 재배와 운반이 필요하고, 건물은 직접 지어야 한다. 택배 물품의 배달 각종 기계의 수리도 필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챗GPT라도 중력을 다운로드할 수는 없다.
다음 단계의 생산성 혁신은 AI가 컴퓨터 화면을 벗어나 현실 세계로 들어올 때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바로 이것이 ‘피지컬 AI(Physical AI)’다.
피지컬 AI는 눈과 귀로 주변을 인식하고, 손으로 물건을 잡으며, 바퀴나 다리로 이동하는 지능형 기계다. LLM은 샌드위치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 줄 뿐이다. 그러나 로봇은 직접 빵과 치즈를 찾아 샌드위치를 만들고, 일이 끝난 후에는 주변 정리까지 할 것이다.
언어 AI는 기호와 정보를 다루지만, 피지컬 AI는 중력과 마찰, 복잡하게 흩어진 물건들, 돌발 상황, 그리고 정해진대로만 행동하지 않는 인간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 이것은 힘든 것이지만, 생산성 혁신을 위해서는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