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당시 대응책을 둘러싸고 지난달 29일 의회 청문회장에 호출된 파우치는 앵무새처럼 동일한 말만 되풀이했다. 어떠한 질문도 소용없었다. 111차례나 같은 답만 읊조리며 일관되게 입을 닫았다.
파우치가 누구인가. 코로나 치료제로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효능을 언급하던 트럼프 당시 대통령 앞에서 그 주장을 대놓고 반박할 만큼 당당했던 인물 아니었던가.
사실 파우치에게는 ‘플립플롭(Flip-flop)’이라는 별명이 늘 따라다녔다.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꾼다는 이유에서다. 팬데믹 초기만 해도 CBS의 ‘60분(60 Minutes)’에 출연해 마스크 무용론을 조목조목 피력했던 그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자 돌연 기준을 바꿨다. “마스크를 두 개 착용하는 것이 상식적”이라고 했다. 전염병 전문가이자 국가 보건 수장이라기에는 발언의 일관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코로나가 종식 국면에 접어들면서 공포에 가려졌던 대중의 눈과 귀도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혼란 속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복기해보니, 마치 한 편의 블랙코미디와 다름없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당시 식당 풍경을 돌이켜보자.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식당 문턱조차 넘을 수 없었다. 바이러스의 호흡기 침투를 막겠다는 철저한 방역 지침 때문이었다. 규정에 따라 마스크를 쓴 채 자리에 앉는 순간, 고개가 갸웃해진다. 음료와 음식을 섭취하려면 마스크를 벗어야 한다. 바로 그 순간, 까다롭기 그지없던 방역 규정은 온데간데없다. 일행과 웃고 떠들며 식사를 즐겨도 그 누구도 제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식당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한 의무 규정의 본질은 과연 무엇이었단 말인가.
긴급 승인된 백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부도, 의학계도 초기에는 “두 번만 맞으면 된다”고 호언장담했다. 급기야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등 제약사 브랜드가 다른 백신을 교차 접종하면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전례 없는 주장도 등장했다. 이후에는 4차, 5차, 그 이상의 추가 접종까지 끊임없이 강요됐다.
유산소 운동을 한다면서 정작 입과 코를 마스크로 막았다. 아무도 없는 승용차 안에서 홀로 마스크를 쓴 채 운전하면서도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심지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수영을 하던 기괴한 시대였다.
팬데믹 사태가 극에 달했을 때 목숨 걸고 현장에 몸을 내던진 의료진과 소방관, 경찰관들은 단지 비 접종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직장을 잃었다. 그뿐인가. 의료 전문가들 역시 반대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배척당했다.
당시 스탠퍼드 의대의 제이 바타차리아 교수는 정부의 과도한 봉쇄 정책에 반대하고 백신 부작용 사례를 공개했다는 이유로 소셜미디어 계정이 삭제됐다. 에런 케리아티 UC어바인 교수는 캠퍼스 내 백신 의무화 정책에 반대하는 글을 썼다가 해임됐다.
이후 메타(전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가 뒤늦게 입을 열었다. 팬데믹이 끝나갈 무렵, 그는 MIT 연구원이자 구독자 300만 명을 보유한 렉스 프리드먼의 팟캐스트에 출연해 이렇게 털어놓았다.
“팬데믹 당시 정부와 과학계 등은 페이스북에 코로나와 관련한 특정 정보를 검열하고 삭제하라고 압박했다. 우리가 검열했던 콘텐츠 중에는 나중에 사실로 밝혀진 것도 많았다. 그들은 우리가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곤란한 후폭풍이 따를 것처럼 압박했다.”
온 사회가 집단적 마비 상태에 빠져들기까지, 기이한 정책을 만들고 통제를 주도한 중심에는 바로 ‘플립플롭’ 파우치가 있었다.
그는 지금 입을 닫고 있다. 묵비권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버린 비겁한 전문가의 씁쓸한 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