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기준금리 인상에 맞춰 예·적금 금리를 올리며 ‘예테크족’ 공략에 나섰다. 시중은행 1년 만기 예금 금리는 연 3%대 초반이다. 사진은 지난달 16일 서울의 금융기관 예금 안내문. [연합뉴스]
직장인 A씨는 최근 만기(3년)가 돌아온 정기예금에 재가입하려다 연 2.85% 금리를 제공하는 3개월짜리 예금을 택했다. 3년 만기 예금 금리가 1년3개월째 연 2.40%로 제자리걸음을 해서다. A씨는 “최근 코스피가 내린 상황이라, 주식 투자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고 단기 예금에 가입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단기 예금 금리가 장기 예금보다 더 높은 ‘장·단기 예금 금리 역전’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중앙일보가 10일 은행연합회에 공시한 은행권 정기예금 금리를 집계한 결과, 5대 은행 모두 만기가 짧은(3개월) 상품 금리가 만기가 긴(3년) 상품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KB국민은행의 ‘KB Star 정기예금’의 경우 3개월 만기 상품의 최고금리는 연 2.85%에 달했다. 하지만 3년 만기 상품 금리는 연 2.40%다. 우리은행의 ‘WON플러스예금’ 역시 3개월 만기 상품은 연 2.90%의 금리를 제공하지만, 3년 만기 상품은 연 2.50%에 머물렀다. 신한·하나·NH농협은행 등 다른 시중은행도 마찬가지였다.
김영희 디자이너
일반적으로 은행은 고객이 돈을 더 오래 맡기는 데 따른 기회비용(포기해야 하는 가치)과 미래 물가 상승 등을 반영해 장기 예금 상품에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요즘엔 이런 상식이 들어맞지 않는다. 주식시장 호황과 가계대출 규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등이 맞물리면서 금리 역전 폭이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KB국민은행 상품 금리 추이를 분석해 보면, 장·단기 예금 금리 역전 현상은 2023년 1월 조짐이 나타났다. 글로벌 통화 긴축으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연 3.5% 수준까지 올린 시점이다. 당시 은행권은 고금리 환경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전략을 바꿨다. 2024년 10월 이후 안정세를 찾는 듯하더니 지난해 8월 다시 금리 역전 폭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증시 호황과 가계대출 규제가 원인이었다. 코스피가 지난해 저점을 찍고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장기간 자금이 묶이는 정기예금의 매력도는 크게 떨어졌다. 가계대출 규제는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6월부터 시행됐다. 대출을 적극 늘릴 수 없게 된 은행들도 굳이 비싼 이자를 주며 장기 자금을 유치할 이유가 사라졌다. 은행권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은행은 굳이 장기 예금을 유치할 필요가 없었다. 단기 예금 금리만 올려 고객을 유치하려는 마케팅 전략을 폈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들도 과거에는 ‘안전한 목돈 굴리기’가 목적이었다면, 최근에는 예금을 주식·채권·부동산 등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기 전 ‘잠시 머무는 파킹(Parking) 공간’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이 같은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금리 인상기에는 시장 불확실성에 대비해 3개월 단위 단기 예금이나 머니마켓펀드(MMF) 등 대기성 상품을 활용해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오경석 신한은행 Premier PIB 강남센터 지점장은 “올 연말까지는 단기 예금을 활용하다가 기준금리 추세를 선반영하는 국고채 금리가 하락세로 돌아서면 장기 예금으로 갈아타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