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색 포니 운전학원 차량에 강사와 함께 올라타 도로로 나서는 순간부터 긴장의 연속이었다. 앞차와 신호 살피랴, 기어 바꾸랴, 클러치 조작하랴 정신이 없었다. 출발할 때마다 변속 미숙으로 시동을 꺼뜨리기 일쑤였고, 특히 언덕길에 멈췄을 때는 차가 뒤로 밀릴까 식은땀이 흘렀다. 당시 운전면허 주행시험에서 응시자가 가장 많이 탈락하던 구간이 언덕길 정차 후 출발이었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의아해할 수 있겠지만,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자동차에 수동변속기가 기본 장착됐다. 구조가 단순해 고장이 적고 연비가 좋았기 때문이다. 반면, 자동변속기는 완제품으로 수입돼 비싼 데다가 연비도 떨어졌다.
수동변속기는 운전자가 직접 엔진 회전수와 기어를 맞춰 가며 가감속을 조절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운전은 양손과 양발을 모두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10여년 후 미국에 온 뒤로 수동변속기 차량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장거리 주행이 많고 개솔린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미국에서는 수동변속기가 선택 사양이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신차 판매에서 차지하는 수동변속기 비중은 1980년 34.6%에서 1990년 22.2%, 2000년에는 9.7%로 떨어졌고, 2021년 0.9%까지 감소한 이후로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급감세는 자동변속기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연비와 변속 속도 모두 사람이 조작하는 수동변속기를 앞질렀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의 EPA 배기가스 및 연비 규제 강화와 전기차 확산까지 겹치면서 제조사들은 자동변속기 개선에 주력했다. 업계에 따르면 수동변속기 옵션 신차는 2006년 143개 모델이었지만 올해는 28개 모델로 급감했다. 불과 20년 만에 선택지가 80%가량 줄어든 셈이다.
필자 역시 현대차 엘란트라 미디어 시승 행사에서야 수동변속기가 장착된 고성능 모델을 몰아볼 기회가 있었다. 수십 년 만에 클러치를 밟았지만 어색함보다 반가움이 먼저 찾아왔다. 기어를 바꾸는 손맛과 엔진 회전수에 맞춰 변속하는 감각은 자동변속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순간 견물생심이 발동했지만, 매일 체증으로 악명 높은 5번 프리웨이에서 왕복 4시간을 운전해야 하는 현실을 떠올리자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수동변속기로 ‘운전의 재미’를 다시 느낄 수는 있겠지만 통근길에서는 사서 고생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 같던 수동변속기에 최근 뜻밖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다시 수동변속기를 배우고 찾는 젊은 층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중고차 업체 카맥스에 따르면 수동변속기 차량 검색은 최근 몇 년 새 48% 급증했고, 구매층 역시 Z세대와 젊은 밀레니얼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수동변속기를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이 현상은 필름카메라와 LP, 카세트테이프, CD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와도 닮아 있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수동변속기는 불편한 기술이 아니라 특별한 경험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수동변속기의 불편함이 오히려 재미가 되고, 희소성이 특별한 가치가 되고 있다. 모두가 자동변속기를 타는 시대에 수동변속기를 운전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차별화된 취향이자 개성인 셈이다.
물론 이런 트렌드가 수동변속기의 부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기차가 늘어날수록 수동변속기가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작은 변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최근 레트로 열풍에서 볼 수 있듯이 사라져 가는 기술일수록 오히려 새로운 가치와 의미가 부여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변속기는 운전을 더 쉽고 편하게 만들어 주지만 수동변속기는 운전하는 즐거움을 기억하게 만든다. AI와 알고리즘이 점점 더 많은 것을 대신해 주는 시대가 될수록 오히려 사람들은 직접 조작하고 개입하는 아날로그 경험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다시 수동변속기를 찾는 이유 역시 기술이 나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술을 통제한다는 인간으로서의 주도권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