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영혼을 바치거나 모든 것을 잃는 것으로 귀착된다. 영혼은 그것을 주신이에게 돌아간다. 영혼이 고통을 이겨 냈을 때 고통은 승화되고 영혼은 스스로를 파괴한 정신의 본질을 회복한다.
영화 ‘오디세이’ 열풍으로 흥행이 이어져 3000년 전 쓴 고전이 다시 베스트 셀러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영화 ‘오디세이(Odyssey)’는 호메로스가 기원전 8세기경 남긴 대서사시 ‘오디세이아(Odysseia)’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오디세이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호메로스의 또 다른 대표작인 ‘일리아스’를 빼놓을 수 없다. ‘일리아스’가 아킬레우스라는 영웅의 분노와 명예, 죽음, 전쟁의 비극을 노래했다면,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가 전쟁을 마친 뒤 고향으로 돌아오는 험난한 여정을 다뤘다.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을 유혹하는 세이렌,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마녀 키르케 등이 등장하는 흥미로운 모험담이지만, 모험보다는 귀향의 서사에 가깝다.
전쟁이 끝난 뒤 10년 동안 바다를 떠돌며 절망을 견딘 오디세우스가 전쟁 영웅으로서 오만과 탐욕을 내려놓고 다시 하나의 인간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장엄한 이야기의 핵심은 ‘노스토스(Nostos)’다. 전쟁을 끝낸 영웅 오디세우스는 온갖 시련을 견뎌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 헤맨다.
‘노스토스(Nostos)’는 그리스어로 ‘귀환’, ‘귀향’을 뜻하는 명사다. 사전적 의미로는 ‘긴 여정 끝의 귀가나 귀환’이라는 뜻이다. 문학이나 고전 맥락에서는 방랑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귀향’의 서사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1688년 스위스 바젤의 젊은 의대생 요하네스 호퍼(Johannes Hofer)는 스위스 용병들이 상처나 열도 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것을 목격했다. 청년들은 돈을 벌기 위해 유럽 전역 군대로 팔려 나갔다.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알프스의 소몰이 노래가 들리면 용병들은 눈물을 흘리며 쓰러졌다. 호퍼는 질병의 이름을 노스토스(귀향), 아고스(고통)의 합성어로 ‘노스텔지어’라 명명했다. ‘노스텔지어’는 ‘향수’라는 뜻이 된다.
인간은 집을 그리워하다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호메로스는 그리스인들이 알고 있던 집의 소중함을, 오디세우스가 십 년의 방황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게 만든 이유다.
바다의 여신 칼립소는 오디세이를 사랑했다. 칼립소는 함께 살면 죽지 않는 불멸의 신으로 영생을 누릴 수 있다며 오디세이를 유혹했다. 인간이 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오디세우스가 원하는 것은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 아내 파넬로페와 장성한 아들 곁이다. 오디세이를 기다리던 늙은 개 아르고스는 주인을 알아본 뒤 숨을 거둔다.
불멸의 신이 아니라고 괜찮다. 머무는 시간동안 정겨운 얼굴들과 가슴 맞대는 사랑이 있으면 돌아오는 길은 열려 있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거운 짐 등에 업고 자신의 길을 가는 고행이다. 사랑하고 늙고, 결국은 죽음으로 끝맺는 생의 마지막 지도다.
집은 시간이 흐르는 곳이다. 인간이 머물 수 있는 등 따습고 배 부른 유일한 곳이다. ‘집으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오디세이는 10년을 폭풍과 사투를 벌이며 떠 돌았다.
어머니는 고향 땅 아버지 산소 곁에 묻히고 싶어했다. 이국 땅에 작은 비석으로 남았다. 애들이 할머니께 꽃을 바쳐야 한다며 반대했다. 조국을 떠나면 문패 없는 이방인이다.
‘오디세이아’가 지금도 읽히는 이유는 서양 문학과 예술, 철학의 밑바탕이 된 이야기로 ‘집으로 돌아간다’는 인간 보편의 서사를 처음 완성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서구 정신사의 한 축이라면 ‘오디세이아’는 서구 문학사의 또 다른 축으로 꼽힌다. (Q7 editions 대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