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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4와 5 사이

Los Angeles

2026.08.11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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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운 전 가주공무원

고동운 전 가주공무원

아, 또 졌다. 어제까지 5단이었는데, 이제 4단이다. 바둑 이야기다. 아이패드나 전화기를 열어 태평양 건너 한국의 이름 모를 누군가와 일과처럼 바둑을 둔다. 상대방을 볼 수는 없지만, 돌을 보면 그 사람의 기풍이나 기분을 알 수 있다. 몸을 사리며 틈을 엿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부터 변칙수를 꺼내 드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평정심을 갖고 내 바둑을 두는 것이 쉽지 않다.  
 
크게 이기고 있는 바둑을 잘 지키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이미 판을 그르친 상대방이 마구 도발하기 때문이다. 이때 잘못 말려들면 역전패다. 다소 불리한 바둑도 포기하지 않고 한 집씩 내 집을 키우고 상대방의 집을 부수어나가면 짜릿한 역전승을 하기도 한다. 대마를 잡아 대승해도 한판의 바둑이고, 반집을 이겨도 한판승이다. 바둑 격언에 이런 말들이 있다.  
 
‘피강자보 (彼强自保)’, 상대가 강한 곳에서는 내 마음을 낮추고 자신을 먼저 돌보라는 말이다. ‘아생연후 살타(我生然後 殺打)’ 도 비슷한 의미다. 내 돌은 아직 미생인데 남의 돌을 잡으려고 덤벼들다가는 결국 크게 망한다.  
 
‘신물경속(愼勿輕速)’, 경솔하고 경망스럽게 빨리 두지 말라는 뜻이다. 빨리 두는 상대를 만나면 어느새 따라 두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 사람의 페이스에 말려드는 것이다. 대화도 그런 것 같다. 생각보다 앞서 서둘러 말을 하면 말실수를 하게 된다.  
 
‘소탐대실(小貪大失)’, 작은 이익을 탐하다가 오히려 큰 것을 잃는다는 뜻이다. 가끔은 상대가 미끼를 던지기도 하는데 이때 덥석 물면 결국 큰 것을 잃게 된다.  
 
‘기자쟁선(棄子爭先)’, 돌 몇 개(사석)를 버리더라도 선수를 잡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뜻이다. 살다 보면 때로는 손해를 볼 때도 있다. 본전 생각에 밑 빠진 독에 계속 물을 부어봐야 손해만 커질 뿐이다. 도박이 그렇고, 안 되는 사업이 그렇다. 이럴 때는 빨리 손을 터는 것이 낫다.  
 
‘부득탐승(不得貪勝)’, 승리를 탐하면 결코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너무 승부에 집착하면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의미다. 내가 4단과 5단 사이를 오르내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둑을 잘 두려면 상대방의 수에 대항해 내가 놓을 수와 그에 따라 앞으로 진행될 다양한 변화를 미리 머리로 놓아 보고 계산해 내게 유리한 수를 놓아야 한다. 고수들이 바둑을 두며 경험하고 연구한 수순을 정석이라고 하며 이를 따라 두면 모두 큰 손해 없이 진행된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이렇게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내 허를 찌르며 들어오는 것이다.  
 
5단 오르기는 힘들어도, 4단 내려가는 것은 순식간이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바둑을 지고 나면 화가 나 또 두게 된다. 이때는 꼭 이겨 앞서 잃은 점수를 찾겠다는 마음뿐이다. 서두르게 되고, 공격적인 바둑이 된다. 그 판도 지고 나면 본전 생각이나 판을 떠나지 못한다. 하루 이틀 사이에 6, 7연패를 하면 어느새 4단이다.  
 
찬물로 세수하고, 커피 한 잔 내려 다시 도전한다. 커피를 만든 이유는 한 모금씩 마시며 천천히 두자는 숨은 뜻이다. 중반에 접어들어 큰 싸움이 벌어져 어느새 손따라 두다가, ‘소탐대실,’ 또 졌다. 식어버린 커피를 마시며 다시 바둑판을 연다. 5단, 갈 길이 멀다.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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