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뉴저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 ‘두다멜 1번’이 새겨진 푸른색 유니폼 차림의 구스타보 두다멜 LA필하모닉 음악감독이 지휘봉을 들자 축구장의 응원 구호가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리듬으로 바뀌었다. 그는 뉴욕필하모닉과 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를 이끌고 축구장의 대표 응원가인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세븐 네이션 아미’를 연주했다. 월드컵 사상 첫 결승 하프타임쇼가 클래식 지휘자에게 무대를 내준 것은 상징적이었다.
이날 두다멜은 클래식과 록, 예술과 스포츠, 미국과 베네수엘라를 하나의 박자 안에 묶었다. 고국의 지진 피해자를 위로하고 세계 어린이의 교육을 지원하는 연대의 무대이기도 했다. 음악으로 장벽을 허물고 공동체를 잇는 그의 철학이 세계 최대 스포츠 축제에서 구현된 순간이었다.
그의 철학은 LA에서 이미 깊이 뿌리내렸다. 대표적인 결실이 청소년 오케스트라 YOLA다. 두다멜은 자신을 길러낸 베네수엘라의 음악교육 운동 ‘엘 시스테마’를 벤치마킹,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무상으로 음악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세계적인 무대에 설 기회를 열어줬다.
두다멜에게 오케스트라는 연주만을 위한 조직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협력과 책임, 희망과 존엄을 가르치는 학교였다. 그는 지휘봉으로 음악을 이끌었고, 무대 밖에서는 아이들이 자기 삶을 스스로 지휘하도록 도왔다. 음악은 일부의 특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는 그의 믿음은 LA 곳곳의 교실과 커뮤니티에서 현실이 됐다.
할리우드 보울에서 열리는 LA필 음악감독으로서의 마지막 공연도 그다운 선택이다. 당초 자신의 업적을 기리는 헌정 무대로 예정됐지만 그는 고별의 스포트라이트를 자신이 아닌 지진으로 고통받는 고국 베네수엘라로 돌렸다. 공연을 ‘베네수엘라를 위한 콘서트’로 바꾼 것이다.
공연 수익금은 이재민과 ‘엘 시스테마’ 학생·가족의 지원에 사용된다. 두다멜과 LA필 단원들도 출연료 없이 참여한다.
화려한 송별식 대신 자선 공연을 택한 것은 두다멜이라는 음악가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에게 음악은 찬사를 받기 위한 예술에 머물지 않았다. 공동체의 상처에 응답하고 서로 다른 사람을 연결하며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키는 사회적 언어다. 마지막까지 그는 지휘대 위의 자신보다 음악이 향해야 할 곳을 먼저 바라봤다.
2009년 28세에 LA필 음악감독에 오른 두다멜은 17년 동안 LA의 심장 박동을 그렇게 지휘했다. 베토벤과 말러의 정통 레퍼토리를 깊이 파고들면서도 라틴 음악과 재즈, 영화음악, 팝과 록을 거리낌 없이 품었다. 현대 작곡가의 신작을 적극적으로 무대에 올리고 라틴아메리카 음악을 변방이 아닌 세계 음악의 중심으로 끌어냈다.
그의 지휘 아래 LA필은 정교하고 혁신적인 오케스트라를 넘어 도시의 문화적 얼굴로 성장했다. 월트디즈니 콘서트홀과 할리우드 보울은 서로 다른 인종과 세대, 음악이 만나는 광장이 됐다.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도 자연스럽게 객석으로 불러들였다.
그가 LA필에 남긴 것은 새로운 레퍼토리만이 아니다. 오케스트라가 이토록 젊고 역동적이며 열린 존재일 수 있다는 감각이다.
두다멜은 할리우드 보울에서 네 차례 고별 무대(20~23일)를 펼친다. 20일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시작으로 21일 라틴 음악 축제 ‘구스타보의 피에스타’, 22일 록 밴드 푸 파이터스와의 협연, 그리고 마지막 날인 23일 ‘베네수엘라를 위한 콘서트’로 17년 여정을 마무리한다.
LA필은 두다멜에게 ‘예술·문화 계관’과 ‘YOLA 창립 음악감독·계관 지휘자’라는 직함을 부여했다. 그는 9월부터 뉴욕필하모닉 음악·예술감독으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지만 LA필 및 YOLA와의 인연은 계속되는 셈이다.
두다멜은 LA를 떠나지만, 그가 던진 화두는 남는다. 위대한 오케스트라의 기준은 얼마나 정교하게 연주하느냐에만 있지 않다. 자신이 속한 도시와 어떻게 호흡하고, 누구에게 음악의 문을 열며 고통받는 이들에게 어떻게 응답하느냐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