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기자가 용의자를 향해 테이저건을 겨누는 모습이 VR 화면에 실시간으로 나타나고 있다.
흉기를 든 용의자와 맞닥뜨리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테이저건을 꺼내야 할지 권총을 뽑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사이 용의자는 한 발짝씩 거리를 좁혀 왔다. 서로의 안전을 곁눈질로 확인하면서 용의자를 향해 “무기를 내려놓고 손을 들어라”고 거듭 외쳤다.
결국 용의자가 흉기를 내려놓고 수갑까지 찼지만 온몸을 조이는 긴장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LA경찰국(LAPD) 올림픽경찰서는 11일 가상현실(VR) 기반 대응 훈련 시연회를 열었다. 그동안 모니터 기반 시뮬레이터를 활용해 온 올림픽경찰서는 LAPD 산하 경찰서 가운데 최초로 VR 훈련 시스템을 도입했다.〈본지 5월 15일자 A-1면〉
올림픽경찰서후원회(OBA)가 약 6만 달러를 지원해 구축한 VR 대응 훈련 프로그램이다. 본지 기자들도 직접 장비를 착용하고 출동 상황을 재현한 실전 시나리오를 체험했다.
VR 속 사건 현장에 들어서자 매 순간 판단의 압박이 밀려왔다. 지근거리의 용의자가 권총을 꺼내 들려는 순간 ‘나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본능이 앞섰다. 테이저건을 소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꺼낼 겨를 없이 권총부터 뽑아 겨눴다. 용의자가 총기를 내려놓으라는 경고를 수차례 무시하며 다가오자 총격이 불가피했다. 훈련용 총기에는 가스가 주입돼 발사할 때 실제 총기와 유사한 반동이 전해졌다.
시연회에 함께한 경관들은 “신고 내용을 미리 전달받고 출동하더라도 현장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즉각 파악하기란 극도로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실전에 가까운 불확실성을 반복해서 체험하게 하는 것이 VR 훈련의 핵심이다. 경관 연루 총격 사건(OIS)을 예방하고 이로 인한 시민들의 인명 피해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레이첼 로드리게스 서장은 “현장 상황을 전부 통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의 도구와 교육을 제공해 경관들이 현장에서 한층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응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나리오 제작과 관리는 LAPD 훈련 부서가 맡아 각 지서에서 발생한 실제 사건과 현장 사례를 토대로 수많은 가상 시나리오를 작성한다. 단순 교통단속부터 자살 위기 대응까지 다양한 상황을 재현할 수 있다. 참가자의 판단과 선택에 따라 상황 전개도 실시간으로 달라진다.
이날 시연에서는 줄리안 로빈슨 경관이 시나리오 조작을 맡았다. VR 속 용의자의 말과 행동을 조종하고 참가자의 대응 수준에 따라 현장 상황을 변화시키는 역할이다. 로빈슨은 “실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다듬고 구축해 훈련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훈련에선 용의자와의 안전거리 확보, 피해자 및 주변인 확인, 추가 인력 요청, 파트너 경관과의 의사소통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참가자의 시선과 시점은 외부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훈련이 끝나면 당시 판단과 대응을 놓고 동료 경관들과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특히 한인타운은 차량과 보행자 통행량이 많아 용의자뿐 아니라 주변 시민과 교통 상황까지 다각도로 살피는 전방위적인 시야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장비는 세계 최대 규모 화기·전술 훈련 전문업체 인베리스 트레이닝 솔루션스가 제공했다. 육·해·공군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 화기 훈련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공급해 온 업체다. 올림픽경찰서는 이 시스템을 경관 교육에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올림픽경찰서를 제외한 서부지부 산하 4개 경찰서 경관들에게도 개방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