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게는 수백억원의 제작비가 드는 영화·드라마가 출연 배우 논란으로 공개를 못하는 등 타격받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작품 활동 중 개인적 논란에 휩싸인 배우 하영·황정민·조진웅·김수현(왼쪽부터). [뉴스1·연합뉴스]
넷플릭스의 신작 드라마 ‘이런 엿같은 사랑’ 홍보 과정에서 불거진 주연 배우 하영의 증조부 친일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하영은 1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필 입장문을 올리고 “가족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로 증조부의 삶을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다. 부끄럽게도 그런 무지한 상태로 증조부에 대한 이야기를 가족의 자랑처럼 꺼내왔다”며 “큰 실망과 상처를 안겨드린 점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했다.
하영은 지난 7일 TV 예능 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KBS2)에 출연해 “4대째 의사 집안이다. 증조부가 고종 황제도 치료했다”고 밝혔다. 방송 이후 그의 증조부가 친일 행적을 의심받는 안상호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어 안상호가 1916년 설립된 친일 단체 ‘대정친목회’의 평의원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논란이 확산됐다. 여기에 안상호가 일본인 아내와 가정을 꾸린 뒤 “나는 일본사람과 똑같다. 조선사람과 그리 상종하는 일이 없으므로 불편한 것은 없다”고 인터뷰한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1918년 기사까지 공개되며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이에 넷플릭스는 관련 홍보 일정을 사실상 중단하고 여론의 향방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지난 7일 공개된 ‘이런 엿같은 사랑’은 배우 정해인과 하영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로, 현재 넷플릭스 글로벌 2위(플릭스패트롤 집계)에 올라있다. 하지만 논란 여파로 하영에 이어 정해인 인터뷰 일정까지 모두 취소됐다. 하영 주연으로 내년 공개 예정인 SBS 드라마 ‘승산 있습니다’ 측도 긴장 상태다. “이미 상당 부분 촬영이 진행된 상태”라며 “해당 사안의 추이를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KBS는 ‘옥탑방의 문제아들’ 해당 회차를 비공개로 전환했다.
문제는 이렇게 배우의 개인적 논란이 불거지면 드라마와 영화 등 작품이 통째로 타격을 받는 구조란 점이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호프’도 관객 400만 돌파를 앞두고 터진 황정민 사생활 논란에 흥행세가 급격히 꺾였다. 같은 시기 헐리우드 대작 영화의 연이은 개봉 영향도 컸지만, 사생활 폭로 여파가 한몫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배우 논란으로 생기는 피해는 투자사·제작사를 비롯해 감독·작가·배우·스태프 등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익명을 요청한 한 OTT 플랫폼 관계자는 “하영 논란이 터졌을 때, 혹시 내년에 우리 회사와 진행하는 작품이 없는지부터 찾아봤다”며 “남일 같지 않아 가슴이 철렁하다”고 말했다. 역시 익명을 요청한 콘텐트 제작사 관계자는 “학폭이나 불륜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데, 증조부 친일 내력까지 확인할 수도 없지 않냐”며 “손실 규모를 업계 관행상 알리지 않지만 한번 터지면 제작사가 휘청거린다”고 말했다.
사람의 매력을 동력으로 삼는 콘텐트 산업 특성상 논란의 진위와 관계없이 의혹이 불거지면 ‘일단 멈춤’이 관행이다. tvN 드라마 ‘두 번째 시그널’은 지난해 제작을 마치고 편성을 기다리던 중 조진웅의 소년범 전력이 드러나 편성이 무기한 연기됐다. tvN 측은 “큰 기대작이었지만, 여전히 편성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상태”라고 밝혔다. 김수현 주연의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넉오프’도 지난해 공개 예정이었으나 김수현의 사생활 의혹이 불거지며 무기한 보류됐다. 이후 인공지능(AI) 녹취 위조 등이 밝혀지고 김수현은 무혐의 처분 받았으나 제작비 규모가 600억원으로 알려진 ‘넉오프’는 아직도 공개 일정을 못 잡고 있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작품 전체에 대한 타격이 너무 큰 만큼, 사회적으로도 작품과 배우를 분리해서 보는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