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해방, 광복 81주년이다. 나라를 되찾은 지 81년이 되었지만, 그날의 감격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내 마음속에서는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해방 당시 열 살, 국민학교(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갔을 때의 풍경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일본인 교사들은 모두 고국으로 돌아갔고, 한국인 선생님들만 교단을 지켰다. 어제까지 일본어로만 진행되던 수업이 하루아침에 우리말로 바뀌었다. 학생들은 어색한 발음을 듣고 킥킥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국어 시간에는 “학교, 집, 기차, 비행기, 아버지, 어머니, 안녕하세요” 같은 가장 쉬운 말부터 다시 배웠다. 수학 시간에는 구구단마저 한국말로 외워야 했다. 몸에는 조선 사람의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일본어가 먼저 떠올랐다. 나는 지금도 구구단을 일본어로 먼저 외울 만큼 그 시대의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나라를 빼앗긴다는 것은 단지 영토를 잃는 것이 아니다. 말과 글, 역사와 정신까지 빼앗기는 일이다. 어린 세대에게 자신의 언어를 잊게 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식민 통치는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집에서는 부모님과 형제들이 우리말을 지키며 살아 주셨기에 학교에서도 조금씩 한국말을 되찾을 수 있었다.
어느 날 국어 시간에 선생님께서 운동장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가리키며 한 구절의 시를 써 보라고 하셨다. 친구들은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태극기는 몸짓으로 노래 부른다”라고 차례로 읽어 내려갔다.
내 차례가 되어 나는 이렇게 말했다. “태극기가 춤추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다.”
순간 교실은 조용해졌다. 선생님께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바로 이런 것이 시란다”라고 칭찬해 주셨다. 그 한마디는 지금도 내 삶 속에 깊이 남아 있다.
돌이켜보면 그 표현은 어린아이의 상상이 아니었다. 당시 거리에서는 남녀노소가 태극기를 흔들며 춤추고 노래했고, 밤이 깊도록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내 눈에는 정말 태극기가 춤을 추고 있었고, 태극기 스스로가 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해방의 기쁨이었다.
그러나 그 감격은 오래가지 못했다. 해방은 찾아왔지만, 민족은 하나가 되지 못했다. 이념의 대립은 국토를 둘로 갈랐고, 기쁨으로 맞이했던 광복은 끝내 동족상잔의 6·25전쟁으로 이어졌다. 해방의 함성이 총성과 포성으로 바뀌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도 처절하게 지켜보아야 했다.
나 역시 그 전쟁에 참전한 학도병이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고, 수많은 전우가 내 곁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말한다. 해방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로 찾아왔지만, 대한민국의 자유는 우리 국민과 참전용사들의 피와 희생으로 지켜낸 것이라고.
오늘의 젊은 세대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결코 저절로 주어진 선물이 아니다. 이름 없이 쓰러져 간 수많은 희생 위에 세워진 값진 유산이다. 우리는 광복의 기쁨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그 자유를 지켜 낸 희생 또한 함께 기억해야 한다.
광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분단의 현실은 우리에게 남겨진 역사적 과제다.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고, 자유 속에서 하나 된 조국을 이루는 날, 그때 비로소 광복은 완성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81년 전 내 어린 눈에 보였던 그 태극기는 다시 한번 하늘 높이 춤추며 힘차게 외칠 것이다.“대한독립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