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LA 한인타운 인근 로즈데일에 안장된 독립유공자들의 묘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호 지사가 2021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으나, 후손이 확인되지 않아 훈장이 전달되지 못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본지 보도를 접한 장손 호윤진씨가 연락해 오면서 가족들도 호 지사가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이때 가족이 수십 년간 보관해 온 사료들도 본지를 통해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독립기념관 자료공개행사에 전시된 호시한 지사의 독립운동 관련 사료들. [호윤진씨 제공]
이후 호윤진씨는 지난해 10월 호 지사 관련 사료 68점을 독립기념관에 기증했고, 이번 행사에서는 이 가운데 17점이 공개됐다.
주요 사료에는 1922년 발급된 ‘중화민국 호조(오늘날의 여권)’와 ‘중국 이름 사용에 대한 진술서’가 포함됐다. 〈본지 2025년 9월 23일자 A-1면〉 진술서에는 상하이에서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동안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중국 이름을 유지해야 했던 과정이 담겨 있다.
1946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급한 ‘임시여행권’도 함께 공개됐다. 임시정부 주미외교위원장 임병직 명의로 호 지사에게 발급된 105번째 여권으로, 광복 이후에도 임시정부가 여권을 발급했음을 보여주는 유일한 실물 자료다.
호 지사가 1940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와 미국 언론 기사도 포함됐다. 당시 현지 신문은 그를 ‘시민권자는 아니지만 진정한 애국자’라고 소개했다.
호 지사는 1908년 샌프란시스코 한인공동회 회원으로 활동했고, 1914년 네브래스카주 헤이스팅스에서 한인소년병학교 설립에 참여했다. 1920년에는 한국에서 임시정부 군자금 모금을 추진하다 일제에 체포됐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와 1927년부터 1945년까지 항일자금과 광복군 후원금 등을 꾸준히 지원했다.
후손들은 호 지사 유해의 한국 국립현충원 이장도 추진하고 있다. 국가보훈부에 이장 의사를 전달했으며, 14일(한국시간) 보훈부 관계자를 다시 만나 관련 절차를 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