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스테이블코인, 한국은 '누가 발행하나' 글로벌 시장은 '어떻게 리스크를 헷징하나'

디지털 중앙

2026.08.13 00:54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한국의 스테이블코인 입법이 결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논의의 초점도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발행 주체를 둘러싼 '은행 중심 vs 비은행 참여' 논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그다음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기관 자금이 실제로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시장의 리스크를 누가, 어떤 순서로 부담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벤자민 사르퀴스 페이야드(Benjamin Sarquis Peillard) 캡(Cap) 창업자]

[벤자민 사르퀴스 페이야드(Benjamin Sarquis Peillard) 캡(Cap) 창업자]

이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금융시장 인프라로 확장되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개인 투자자 중심의 유동성 공급에서 벗어나 토큰화된 국채나 머니마켓펀드 같은 전통 자산이 담보로 활용되고, 규제받는 트레이딩 회사와 자산운용사가 참여하면서 시장의 요구 수준도 달라지고 있다. 수익 역시 토큰 보상에 기대기보다 실제 차입 비용과 신용 위험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기관 진입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 중 하나는 수익률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 익명화된 유동성 풀에 자산을 예치하는 방식으로는 기관의 내부 리스크 관리나 회계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근 글로벌 온체인 신용시장에서는 담보 제공자와 차입자를 분리하고, 별도의 참여자가 신용 위험을 인수하는 구조가 등장하고 있다.
 
프랭클린템플턴과 서스쿼해나 등이 투자한 온체인 사모신용 플랫폼 캡(Cap)은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캡(Cap)의 백서에 따르면 플랫폼에는 예치자(Lender), 차입자(Borrower), 인수자(Underwriter)라는 세 주체가 참여한다. 예치자가 달러 표시 자산을 공급하면 차입자가 이를 활용하고, 별도의 인수자가 특정 차입자에 대한 담보를 에스크로하고 상환을 보증하는 방식이다.
 
핵심은 누군가 신용을 심사했다면 그 주체가 먼저 손실을 부담하도록 설계했다는 점이다. 대출마다 전담 인수자가 배정되고, 인수자가 제공한 담보는 예치자보다 먼저 청산되는 1차 손실 완충 역할을 한다. 담보 역시 차입자가 직접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인수자가 맡으며, 인수자와 차입자의 조합을 서로 격리해 포지션 간 위험 전이도 제한한다.
 
이 같은 구조는 기관 투자자가 익명화된 온체인 풀에 직접 위험을 떠안지 않고도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한다. 다시 말해 온체인 금융이 기관 자금을 받아들이기 위해 기존 금융시장의 신용보강과 위험분담 방식을 블록체인 위에 재구성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적용 사례도 등장했다. 비트코인 금융 프로토콜 롬바드(Lombard)는 지난달 23일 '비트코인 온체인 크레딧 전략'을 내놓으며 유로넥스트 상장 트레이딩 회사 플로우 트레이더스(Flow Traders)를 파일럿 파트너로 발표했다.
 
플로우 트레이더스는 마켓메이킹에 사용할 스테이블코인을 캡(Cap)을 통해 조달하면서 자체 자산을 온체인 담보로 묶지 않는다. 롬바드 전략에 공급된 비트코인이 담보 커버리지를 담당하고, 플로우 트레이더스가 지불하는 인수 프리미엄은 볼트 참여자에게 비트코인 표시 수익으로 돌아가는 구조다. 기관이 온체인 신용시장을 활용하면서도 기존 금융사의 자산관리 및 규제 프레임과 충돌하는 부분을 줄이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구조가 위험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아니다. 가격 변동 위험을 줄이는 대신 차입자와 인수자의 신용 위험을 부담하는 방식으로 위험의 성격을 바꾼 것에 가깝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얼마만큼의 담보를 제공하고, 어떤 조건에서 손실을 부담하며, 그 정보를 시장 참여자가 얼마나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느냐다.
 
캡(Cap)은 담보를 온체인에 에스크로하고 청산 조건을 사전에 코드화해 예치자가 자신의 보호 수준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한다. 기존 금융에서 계약과 중개기관을 통해 관리하던 위험분담 구조를 코드와 온체인 담보로 가시화하려는 것이다.
 
벤자민 사르퀴스 페이야드(Benjamin Sarquis Peillard) 캡 창업자는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모든 것을 인간의 판단과 신뢰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며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거래와 계약의 조건을 코드로 설정하고 자동으로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누군가를 믿어야만 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신뢰'가 아닌 '검증'을 기반으로 더 투명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관 자금 입장에서 이 차이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담보의 존재와 청산 순서를 상대방의 공시나 신용등급에 의존해 확인하는 대신, 온체인에서 직접 검증할 수 있다면 내부 리스크 관리 절차를 통과하기가 그만큼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시장 환경 역시 이런 변화의 배경이 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기준금리를 3.50~3.75%로 동결했지만 표결은 9대 3으로 갈렸다.  
 
클리블랜드·미니애폴리스·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 3인이 0.25%포인트 인상을 주장하며 반대표를 던졌고, 세 명이 같은 방향으로 반대한 것은 2016년 9월 이후 처음이다. 이들은 인플레이션이 2% 목표를 5년 넘게 웃돌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금리 방향성이 불확실해질수록 기관 투자자의 관심도 단순한 고수익에서 벗어난다. 특정 토큰의 가격 상승이나 보상에 기대기보다 금리 사이클과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현금흐름과 위험조정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해진다. 온체인 신용시장이 단순한 디파이 수익 상품을 넘어 기관형 금융 인프라를 실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변화는 국내 스테이블코인 논의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지금까지 국내 논쟁은 주로 누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는지에 집중돼 있다. 은행이 중심이 될 것인지, 비은행 금융회사나 핀테크 등으로 참여 범위를 넓힐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다.
 
그러나 발행 주체가 결정된다고 시장의 설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스테이블코인이 실제 금융시장에 유통되고 기관 자금까지 유입된다면, 그 자금이 어디로 흘러가고 누가 신용을 부담하며 손실이 발생했을 때 누가 가장 먼저 책임질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나타나는 온체인 신용 구조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한 실험이다. 캡(Cap)이나 롬바드와 플로우 트레이더스의 사례가 완성된 해답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이들의 시도는 스테이블코인과 온체인 금융의 경쟁력이 더 이상 발행량이나 유통 규모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이 지금 결정하려는 것이 '누가 발행할 것인가'라면, 글로벌 시장은 이미 '기관 자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위험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설계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스테이블코인이 결제와 자금조달을 넘어 금융시장 인프라로 자리 잡으려면 결국 이 두 질문에 모두 답해야 한다. 발행 주체를 정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라면, 그다음 경쟁은 누가 더 신뢰할 수 있는 리스크 관리 구조를 만들어 기관 자금을 수용할 수 있느냐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현식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