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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앞당긴 존슨…"건국훈장 추서를"

Los Angeles

2026.08.13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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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뒤에도 일 총독부 잔류
존슨이 워싱턴에 이의 제기
트루먼 '한국해방' 성명으로
총독 잔류조치에 해명·사과
존슨 공로, 80여년만에 조명
미 국무부에 게시돼 있는 유럴 알렉시스 존슨의 사진. 그는 국무부 내에서 손 꼽히는 '극동 전문가'로 1966년 주일 미국대사로 부임했다.

미 국무부에 게시돼 있는 유럴 알렉시스 존슨의 사진. 그는 국무부 내에서 손 꼽히는 '극동 전문가'로 1966년 주일 미국대사로 부임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항복했지만 한반도에선 조선총독부와 일제 경찰이 그대로 남아 공권력을 행사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광복과 식민통치의 해체 사이엔 시차가 있었던 것이다.
 
그럼 광복은 어떻게 비로소 현실이 됐을까. 광복절을 맞아 본지는 다년간 외교문서를 추적하며 ‘지체된 광복’의 역사를 파헤쳐 온 김태환(84) 씨를 만났다. 그는 자칫 더 길어질 수 있었던 총독부의 존속을 막는 데 미국 외교관 U. 알렉시스 존슨(1908~97)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건국훈장 추서를 제안했다. 편집자주
 
“1945년 8월 15일은 진정한 광복이 아니었습니다. 일본 천황의 항복 선언만 있었을 뿐 한반도에는 총독부와 일제 경찰이 그대로 남아 공권력을 행사하고 있었죠.”  
 
은퇴 후 한미 외교사 탐구에 정진해 온 김태환 씨는 한국의 광복사를 새로 써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8.15 이후에도 일제 통치기구가 존속했던 만큼 광복을 하루의 사건이 아닌 식민 통치가 실제 해체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과정의 핵심 인물이 당시 마닐라 주재 미국영사 존슨이었다는 게 김 씨의 결론이다.
 
당초 미군은 한반도에서 행정 공백과 혼란을 막기 위해 총독부 조직과 일본인 관료들을 일정 기간 활용하려 했다. 일본에서 천황과 기존 정부조직을 유지한 것처럼 말이다. 이 같은 행정 편의주의 탓에 9월 8일 미 24군단이 제물포(인천)에 도착했을 때 환영 인파가 밀려들자 일제 경찰이 발포해 2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다쳤다. 이튿날 존 하지 미 24군단장이 서울에 진주할 때에도 일본군이 경호를 맡았다.
 
김 씨가 찾아낸 한국 관련 외교문서에 따르면 존슨은 그 해 8월 25일 마닐라에서 한국 진주를 앞둔 존 하지 중장 등을 만나 총독부와 일본 관리 활용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의 의견은 폴 슈타인토르프 마닐라 총영사를 거쳐 제임스 번즈 국무장관에게 서면 보고됐다. 관련 자료는 린든 B 존슨 대통령 도서관에 ‘한국 외교문서’로 보관돼 왔으며, 최근 김 씨가 찾아냈다.  
 
존슨의 의견은 런던 출장 중이던 번즈 장관 대신 딘 애치슨 국무부 부장관에게 전해졌다. 애치슨은 일제 잔류가 “매우 비우호적인 반응을 불러왔다”며 트루먼에게 미국의 정책을 명확히 밝히는 대통령 성명을 건의했다. 나흘 뒤인 9월 18일 트루먼은 ‘한국 해방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트루먼은 성명에서 일부 일본인이 남아 있는 것은 “전문적·기술적 능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김 씨는 여기에 정책 수정을 넘어 해명과 사과의 의미가 담겼다고 해석했다. 또 존슨의 문제 제기가 없었다면 나오기 어려웠다고 봤다.
 
그는 “미군 진주 전부터 총독부 잔존의 위험성을 미국 정부 내부에서 구체적으로 경고한 사람은 존슨이었다”며 “그의 건의가 정책 전환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주장했다. 또 “자기 일이 아닌데도 조선인을 위해 나선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며 “뒤늦게나마 그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해야 한다”고 했다.
 
존슨이 한반도 처리에 관심을 보인 것은 한국과의 인연 때문이다. 그는 초임 관리 시절 서울에서 부영사로 근무하며 일제의 강압적인 식민통치와 조선인들의 고통을 목격했다.
 
김 씨는 발굴한 자료를 주미한국대사관과 국가보훈부에 전달하고 건국훈장 추서를 제안했지만 반응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보훈부는 존슨의 활동 시기가 서훈 기준에 벗어났다고 간단히 배제하며 직급이 낮다는 것도 문제 삼더군요. 강경화 주미대사는 ‘밑에서 알아서 하라’는 반응을 비서관을 통해 전해왔습니다.”
 
GM, 크라이슬러 등에서 재무 전문가로 일하다 2010년 은퇴한 그는 광복 직후의 일제 통치에 대한 의문을 품고 기록을 추적해 왔다. 그 결과 국무부 기밀 해제 문서와 대통령 도서관 등의 자료를 찾아내 존슨의 역할을 확인했다.
 
그는 “일본의 항복과 일본의 실질적 통치가 끝난 시점은 구분해야 한다”며 “총독과 일본 공권력이 어떤 과정을 거쳐 사라졌는지 밝혀야 광복의 역사가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만간 한국을 방문해 광복회 등을 찾아 존슨의 서훈을 촉구할 계획이다. 김 씨는 아직 한미 관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많고, 잘못 알려진 사실도 많다며, 그릇된 사실은 바로 잡고, 숨겨진 진실을 계속하여 발굴해 세상에 내놓겠다는 굳은 투지를 스스럼없이 밝혔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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