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살을 훌쩍 넘긴 지금, 과거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감명 깊게 읽으며 배웠던 안톤 슈나크의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부쩍 생각난다. 수필은 ‘울음 우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라는 구절로 시작한다.슈나크는 자연과 인물, 사건 등 만상에서 느껴지는 슬픔을 편안한 시선으로 우리에게 전한다. 마치 한 편의 심리소설처럼 작품을 이끌어 간다. 보통 사람의 시선으로 인생의 슬픔을 열거한다.
작금 대한민국의 어지러운 시국이 우리를 참을 수 없이 슬프게 한다. 희생과 땀으로 지켜온 대한민국 민주주의 터전이 흔들리고 투명해야 할 선거의 공정성이 의심받는 현실이 안타깝다. 또 거리에서 광장에서 밤새도록 서성거려야 하는 모습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 1조 2항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우리는 왜 광장에서 성난 군중이 되어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는가. 선거관리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국가 기관의 무능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진실을 외면하는 권력과 그 권력에 맹종하며 법과 상식을 파괴하는 자들의 뻔뻔한 태도도 우리의 가슴을 후벼판다. 서울시 공무원이었던 1971년 총선 때 서울사대부고 강당에서 밤새 수개표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몸은 피곤했어도 뿌듯한 보람을 느꼈었는데….지금 이 현실은 참 슬프다.
다시 상식과 정의가 바로 서는 대한민국을 염원한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다시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조금이라고 힘을 보태는 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중요하다. 그런데 여의도 전쟁터는 꼴사나운 ‘네 탓’ 공방으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메마른 골짜기가 끙끙끙 앓더니만 참았던 욕망 덩이 와르르 허물 벗네, 마중물 한 바가지에 쏟아지는 물소리’ 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