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 시인의 번역시집 ‘한국 현대시(Contemporary Korean Poetry)’가 얼마 전 아이오와대학 출판부에서 새로 발간됐다. 정말 고맙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지난 1970년 처음 발행돼 학계의 호평을 받은 책인데,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재판을 발행한 것이다.
문예 창작 분야에서 권위가 있는 아이오와대학 출판부에서 56년 전에 발행한 책을 다시 출간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K-컬쳐의 위상과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시대적 분위기 등의 현실적 이유도 물론 작용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이 책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었고, 우리 시대의 고전(古典)으로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훌륭한 번역가이기도 한 고원 시인이 10여년이 넘는 시간과 땀으로 세상에 내놓은 ‘한국 현대시’는 가장 많은 현대 한국 시인의 시작품을 소개한 번역시집이다. 영문학계에서 인정받는 최초의 한국 번역시집이며 출판물로,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데 중요한 시작점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현대시’는 주요한, 한용운, 김소월부터 김영태, 황동규, 마종기에 이르는 141명의 시인이 쓴 184편의 현대시를 해방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 책 이전에도 영어로 번역된 한국 시집이 몇 권 있었지만, 대부분 한국에서 출판되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출판사에서 제한된 부수로 출판되었다. 이와 달리 고원의 ‘한국 현대시’는 권위를 자랑하는 아이오와대학 출판부에서 발행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독자들은 미국에서 출판된 ‘한국 현대시’를 쉽게 접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고원 시인의 업적도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고원 시인은 한국시를 영어로 번역, 소개하는 작업에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평생 활동한 빼어난 번역가였다. 1959년 ‘영미 여류 시인선’의 번역과 출판을 시작으로, 2004년까지 10여 권의 시집을 영문으로 번역 출판한 그는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한 축으로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고원 시인은 1961년에 발행된 번역시집 ‘한국의 시들(Korean Verses)’의 번역과 편집을 주도했다. 이 시집은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던 변영태, 피천득, 리처드 러트 등 여덟 명의 번역가들이 시인 43명의 시를 번역해 수록했다.
이어 1980년에는 ‘오적’의 김지하, ‘겨울공화국’의 양성우, 고은 등 대표적 저항 시인들의 시를 영문으로 번역, ‘한국의 저항 시인들(South Korean Poets of Resistance)’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출판하였다.
그리고 ‘한국 현대시’ 발간 30여년이 지난 2001년 고원 시인은 다시 한번 한국 시인들의 작품을 소개한 ‘다양한 목소리들(Voice in Diversity)’를 펴냈다. 이 시집에는 ‘노동의 새벽’으로 유명한 박노해, 김사인 시인,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고형렬, ‘들꽃’의 나태주 등 해방 이후 태어난 시인 37명이 쓴 92편의 시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고원 시인의 번역시집이 전문가들과 학계의 주목을 받고,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 한국 현대시 역사의 줄기를 정확하게 파악해 소개할 시인과 시를 선정했고, 여기에 세계적 안목을 더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한국문학 학사, 미국에서 문예창작 석사와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고원은,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평생을 이 일에 헌신했다.
둘째, 고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시인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인들의 좋은 시들을 찾아내 번역하고 소개하는 데 앞장섰다. 이러한 자세는 한국문학에 대한 사명감과 자부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인다운 과감한 번역이다. ‘한국 현대시’의 서문에서 문예 창작의 책임자였던 프레드릭 윌 교수는 고원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고원은 패기 넘치는 시인으로, 다른 시인들의 작품을 과감하게 번역합니다. 무엇보다, 그는 언어의 유연성을 이해합니다. 그의 이러한 인식은 이 번역 시집에 잘 나타나 있으며, 신선함을 만들어냅니다.”
‘한국 현대시’를 비롯한 고원 시인의 번역 시집들은 한국 시를 영어 문화권뿐만 아니라 세계에 알리는데도 크게 공헌한 매우 귀중한 자료들이다.
고원 선생은 단순한 시인이 아니고, 교수, 수필가, 칼럼니스트, 번역가, 문학지 발행인, 교육자, 문화운동가이자 문단의 지도자로 많은 일을 하셨는데, 이번 ‘한국 현대시’의 재판 출판을 계기로 그의 번역 문학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고원 시인은 말했다. “한국시를 영어로 번역하고, 세계와 함께하는 것은 나의 사명이자 자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