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연차가 오랜 분들, 이젠 안정적인 분들께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이제 겨우 밥이나 좀 먹게 되었지요.” 겸손한 안분지족(安分知足)이다.
그 밥, 아직도 살만한 기준이 되는 잣대로 쓰인다. 삼시세끼 밥을 먹던 우리 세대에겐 밥을 먹는 게 곧 살아가는 일이었다. 서로 마주치면 “식사 하셨습니까?” 하고 안부하던 시절이 있었다.
요즈음 밥은 갈수록 홀대를 받는다. 드넓은 캘리포니아 곡창지대에서 질 좋은 쌀을 공급받고 있어서 귀한 줄 모르게 되었다. 다이어트 열풍 속에서 탄수화물 집합체인 밥은 접시 한 귀퉁이의 흰색 데커레이션으로 남은 채 버려도 되는 음식물이 되었다.
지난 주일 교회에서 배식하고 밥이 남았다. 큰 솥 한 솥이 남아 봉지봉지에 담겨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교우들 대부분이 밥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오히려 떠맡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우리집에도 밥을 안 먹는 이가 있어서 쌀을 아예 들이질 않는다. 그래서 우리 집엔 밥이 귀하다. 내가 기꺼이 한 봉지 얻으니 다른 교우들도 마지못해 가져가서 밥이 눈 앞에서 버려지는 참사는 없었다. 맨밥을 얻어가며 나처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주변에서 놀린다. 오래전 김지하 시인의 글에서 ‘밥은 하늘’ 운운한 시를 읽은 뒤엔 더욱 밥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교회에서 얻어온 밥 5공기 분량이 냉장고에 들어있어서 마음이 쓰였다.
새벽부터 일어나 김치볶음밥을 만들고, 한봉지의 밥을 볶아선 둥글게 뭉쳐 김자반을 뿌려 주먹밥을 만들었다. 주먹밥에 김이 잘 안 붙어서 억지로 붙인 후 한 개씩 랩으로 쌌다. 한 공기 분량의 밥으로는 유부초밥도 만들었다. 김치 없이 야채와 달걀과 햄을 넣은 볶음밥도 했다. 밥전도 했다. 더 얻어왔으면 누룽지도 만들 수 있었다. 밥을 버리지 않고 모두 활용한 뿌듯함에 스스로 기특했다.
예전에 감동하였던 김지하 시인의 '밥은 하늘입니다'시를 다시 읊조려본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 속에 모시는 것
아아 밥은/ 모두 서로 나눠 먹는 것'
함께하고 나누어야 하는 것이 어찌 밥뿐이겠는가? 식은밥 한 덩이에서도 배울 게 있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