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서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꼭 찾아야죠. 마지막으로 꼭 한번 보고 싶어요.” 고(故) 박영석 대장의 아내, 홍경희(62)씨가 말했다.
2011년 10월, 안나푸르나(8091m) 남벽 등반 도중 눈사태에 휩쓸려 사라진 박영석, 신동민, 강기석이 빙하에 묻힌 지 15년이 지났다. 수차례 수색에도 그들의 유해나 유품은 발견되지 않았다. 최근 히말라야에서 사라진 시신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가운데, 박 대장 일행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받는다.
2011년 10월 18일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사라진 박영석 대장(오른쪽)과 그의 등반 파티 신동민(왼쪽), 강기석 대원. 사진 안나푸르나남벽원정대
지난 10일 네팔 북동부 로왈링산맥 얄룽 리(약 5630m)에서 지난해 11월 실종된 산악인으로 추정되는 시신들이 발견됐다. 몬순으로 눈과 얼음이 녹으면서 산비탈에 놓인 시신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주민들은 얄룽 리 베이스캠프(5300m) 인근 해발 약 5000m 지점에서 5구의 시신을 발견했다. 얄룽리 등반 사고는 지난해 히말라야에서 발생한, 가장 치명적인 사고였다. 거대한 눈사태가 설사면을 오르던 12명의 대원을 덮쳐 7명이 사망했고, 이 중 5명은 눈과 얼음 속에 묻혔다.
히말라야에서는 거의 매년 눈사태나 세락(거대한 빙탑) 붕괴로 인한 인명 사고가 일어난다. 지난달 말 파키스탄 카라코람히말라야 브로드피크(8047m)에서도 캠프2(6400m)~캠프3(7100m) 사이에서 눈사태가 일어나 네팔의 전설적인 등반가 니르말 푸르자(43)를 포함해 10명이 사망했다.
세락 붕괴로 인해 눈사태에 휩쓸리면 상당수는 시신을 찾을 수 없다. 거대한 쓰나미와 같은 눈 폭풍이 눈과 얼음, 돌과 자갈 그리고 사람까지 한꺼번에 쓸어내리고 이 중 상당 부분을 거대한 크레바스(갈라진 빙하의 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2019년 브로드피크 등정 후 실종된 고 김홍빈 대장. 사진 중앙DB
한국의 등반가 상당수도 히말라야 빙하에 잠들어 있다. 가깝게는 2021년, 장애인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14좌를 완등한 뒤 브로드피크 하산 길에서 실종된 고(故) 김홍빈 대장이다. 그는 북면 티베트 방향으로 추락했는데, 지형이 워낙 복잡해 사실상 수색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공교롭게도 김홍빈 대장을 찾는 와중에 1999년 브로드피크 등반 중 실종된 한국인 산악인 하모 씨의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 실종 22년 만에 발견된 것이다.
2009년 히운출리 북벽 신루트 등반 중 사망한 민준영 등반대장(오른쪽)과 박종성 대원. 중앙DB
2019년 안나푸르나와 맞붙은 히운출리(6441m) 북면에서도 극적인 시신 수습이 있었다. 2009년 9월 히운출리 북벽을 오르다 눈사태에 휩쓸려 실종된 고(故) 민준영·박종성 대원이 주민들에 의해 10년 만에 발견됐다. 발견 시기는 얄룽 리의 경우처럼 눈이 녹는 7월이었다. 두 대원은 해발 약 5400m 지점, 마지막 관측지점보다 약 320m 아래서 발견됐다. 히말라야 빙하는 1년에 수십 m에서 100m 이상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시신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빙하의 속도는 위치와 깊이에 따라 다르고, 눈사태 잔해와 함께 묻힌 물체는 얼음 속에 갇힌 채 이동하거나 크레바스 깊숙이 빠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시신이 얼마나 깊이 묻혀 있느냐가 발견 가능성을 좌우한다.
15년간 일말의 단서도 없는 박영석 일행
2011년 10월 18일. 안나푸르나(8091m) 남벽에서 정상 공격을 준비하던 박영석(당시 48세) 대장과 신동민(당시 37세)·강기석(당시 33세) 대원이 사라졌다. 전날 오후 4시 전진 캠프(ABC·약 5100m)를 떠나는 모습이 마지막 장면이다. 그리고 이후 시신도, 배낭도, 장비도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박 대장은 에베레스트 남서벽 신루트를 개척 후, 8000m급 봉우리에 한국인의 이름을 딴 새 등반로를 내는 ‘코리안 루트’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었다. 당시 차세대 산악인 중 으뜸으로 치던 신동민·강기석이 그의 등반 파티였다.
2011년 안나푸르나 남벽 등반 당시 박영석 대장. 사진 안나푸르나남벽원정대
세 사람을 찾기 위한 수색은 세 차례 진행됐지만,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가장 최근인 2023년 3월, 수색에 참여한 김헌상 씨는 베이스캠프(해발 약 4500m) 인근과 드론을 이용해 전진 캠프(ABC) 근방을 샅샅이 뒤졌지만,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결국 (세 명의 시신은) 실종 지점에서 베이스캠프나 ABC 인근까지는 내려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진 캠프를 떠나 상당 부분 등반한 뒤 일기가 나빠 내려오다가 눈사태에 휩쓸린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금 상황에서 시신을 찾으려면 전진 캠프 위쪽으로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캠프 인근 빙하에서 발견될 확률은 낮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러나 당시 수색한 날짜가 3월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수색대가 촬영한 영상에도 눈 내리는 모습이 담겼는데, 아무래도 이때는 수색의 적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수색대도 “7~8월에 다시 오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남겼다.
안나푸르나 남벽 신동민(오른쪽), 강기석 대원. 사진 안나푸르나남벽원정대
단, 안나푸르나 남벽 아래는 수색 작업도 위험하다. 실종 지점으로 추정되는 ABC는 등반 장비를 착용해야 할 정도로 가파른 얼음 사면이다. 또 수직 벽 아래라서 얄룽 리나 히운출리의 경우처럼 주민이 다닐만한 길도 아니다. 김 씨는 “전문 등반가가 아니면 엄두도 낼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세 차례의 수색에도 흔적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결국 사고 당시의 눈사태 규모로 돌아간다. 사고 당시 ABC 주변에는 최대 20~30m의 눈이 쌓인 것으로 추정됐다. 김 씨는 “당시 눈사태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다시 실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뜻밖의 말을 덧붙였다.
“희망을 건다면 다시 한번 세락이 무너져 밑에 있는 빙하를 밀어낸다면 뭔가가 발견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빙하가 한번 뒤집어져야 변화가 생길 것 같아요.”
히말라야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시신들 히말라야에 잠든 등반가의 시신을 꼭 수습해야 하는 건 아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만 해도 수많은 등반가의 시신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지난해 7월, 독일의 바이애슬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라우라 달마이어가 파키스탄 카라코람 라일라 피크(6069m) 아래 약 5700m에서 낙석 사고로 사망했다. 사고 직후 수색이 진행됐지만, 그의 가족은 고인의 뜻에 따라 그대로 두기로 했다.
최근 추세는 가능한 수습하는 쪽이다. 등반 루트 상에 있다면 더 그렇다. 에베레스트 북동릉 약 8500m 지점에 30년간 방치된 이른바 ‘그린 부츠’의 주인공도 최근 수습하기로 결정했다. 그린 부츠는 1996년 등반 중 사망한 인도-티베트 국경경찰(ITBP) 소속 도르제 모룹으로 근래 확인됐는데, 인도 당국은 그를 데려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도르제는 사망 당시 그린색 코플라츠(플라스틱) 등산화를 신고 있어 그린 부츠로 불렸다.
가장 극적인 사건은 1924년 에베레스트 등반 중 사라진 조지 말로리(1886~1924)를 75년 만에 발견한 것이다. ‘말로리&어빈 연구 원정대’는 에베레스트 정상 직전 해발 8500m 지점에서 등 부위가 하얗게 벗겨진 말로리의 시신을 찾았다. 75년 동안 에베레스트에 묻혀 있던 말로리를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를 발견한 미국 산악인 콘래드 앵커(64)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내 인생에서 아주 특별한 순간이었고, 매우 겸허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콘래드는 동료들과 함께 시신 곁에서 추모 의식을 치르고 그를 돌로 덮어주었다.
박영석 15주년, 다시 그를 찾는 산악인들
2018년 당시 안나푸르나 남벽 빙하가 시작되는 수직 벽을 오르는 박영석 대장과 강기석 대원. 사진 안나푸르나남벽원정대
오는 10월로 박영석 대장 일행이 실종된 지 15년에 이른다. 동국대 산악부 동기들(동국대 83학번)과 대학 산악부 동기들은 15주년을 맞아 추모 트레킹을 준비 중이다. 박 대장과 대학 1학년 때부터 함께 등반한 김진성(62) 씨는 “꼭 15주기라서가 아니라 가을이 되면 그가 생각난다. 올해로 추모 트레킹이 열세 번째다. 거의 매년 가을이 되면 박영석 대장을 추모하는 트레킹 팀이 꾸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안나푸르나 남벽 BC까지 가서 빙하의 상황을 살펴볼 예정이다. 또 내년이나 내후년 여름에 다시 수색대를 꾸릴 계획이다.
2011년 사고 당시 수색에 참여한 김재수(65) 대장은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며, 이전과는 다른 수색 방법을 제안했다.
“2005년 파키스탄 십톤 스파이어(5852m) 베이스캠프에 있을 때 외국원정대의 대원이 실종됐는데, 헬기와 대규모 인원을 동원해 3일간 수색해도 못 찾았어요. 그런데 산 아래 동네 사람이 끌고 온 개가 있었는데, 그 개를 풀어놓으니 30분 만에 시신을 찾았어요. 지금까지 (박 대장 일행) 수색은 (헬기와 드론 수색 등 ) 할 만큼 했으니, 개를 동원해서 한번 해봤으면 싶습니다.”